민주통합당이 새해 예산안을 해를 넘겨 늑장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주 해군기지 예산 문제로 우왕좌왕한 것을 두고 '강경파 눈치 보기'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안보 현안이나 갈등 사안에 대해 큰 틀의 전략이나 정책 노선을 제시하고 못하고 강경파나 시민단체 목소리에 휘둘리는 행태를 반복해 수권 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과 함께 참여정부 때 추진됐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시행을 코앞에 두고 사회적 논란이 확산된 사안이다. 2010년 말부터 재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전면 백지화 요구가 거세지자 민주당은 해군기지 건설의 필요성은 부인하지 못하면서도 공사 전면 중단 및 재검토를 주장해 갈지자 행보와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여 왔다. 대다수 국민들이 안보 관련 현안으로 생각하는 사업에 대해 민주당은 입지 선정 과정의 절차적 문제만 제기해 4ㆍ11 총선 때부터 중도층에 안보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이 같은 오락가락 행보는 반복됐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예산을 볼모로 발목 잡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내 처리를 누차 강조했지만, 예산안 처리의 쟁점인 제주 해군기지 예산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 민주당은 당초 간사 협의에서 제주 해군기지 예산 2,009억원을 전액 삭감할 것을 주장하다가 국방부 예산 중 일부를 국토해양부 예산으로 옮기는 방안을 내놨다.
민주당 원내대표단은 지난해 12월 31일 저녁에 결국 '15만톤급 크루즈 선박 입항 가능성 검증' 등 세 가지 부대의견을 달아 예산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새누리당과 합의했지만 이마저도 강경파 의원들의 반대에 막혔다. 1일 새벽에서야 부대조건을 70일 이내에 이행한다는 조건이 추가되면서 예산안이 처리됐지만, 당내 일부에서도 "지도부가 또 다시 시민단체 눈치보기로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등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 같은 갈지자 행보는 지도부의 전략 부재뿐 아니라 민주당 정책 노선의 혼란상을 드러낸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민주당이 4ㆍ11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군기지 전면 재검토 등 통합진보당 정책을 대거 수용하면서 좌클릭했지만, 오히려 중도층에게 불안감을 줘서 총선과 대선 패배의 요인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한 의원은 "지나치게 좌측으로 기운 정책으로 인해 중도층을 잃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많은데,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또다시 그 행태를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안보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모호한 입장이 총선과 대선 패배의 핵심 요인이었다"면서 "민주당은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제주 해군기지가 안보상 필요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또 다시 모호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안보 문제에 대한 당의 노선과 정체성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중도층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