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재능 최종 확인차 신춘문예에 응모잔뜩 기대했었는데 그만…문학에 후회 없다면 거짓… 출판의 길 선택했을 뿐건강·기회 허락한다면 한번 더 투고하고 싶어"
"60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린 것 같아. 정말 기뻐요." 민음사 박맹호(79) 회장은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명예당선 소식에 "확정된 거냐"고 반문하더니 대답도 듣기 전에 파안대소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소식 미리 전해 듣고 얼마나 좋던지…."
박 회장이 21세 문학청년 시절이던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단편소설 '자유풍속'이 심사위원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낙선했다는 사실을 지난 해 말 펴낸 자서전 에다 밝힌 뒤, 한국일보사는 당시 심사위원이던 문학평론가 백철씨의 선후평(選後評) 등을 다시 살폈고((2012년 12월 10일자 보도), 늦게나마 뒤틀린 결정을 바로잡기로 했다. 그의 작품은 50년대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기만적 '자유'를 노골적으로 겨냥했고, 신생 언론이던 한국일보는 신예 작가의 거침없는 패기를 온전히 수용하기 힘들었다.
"그 땐 무서울 게 없었어요. 패기만만했지. 내가 이래봬도 글쓰기에는 재간이 있었던가 봐요. 대학 입학한 뒤로도 여기저기 글을 응모하면 늘 입선 가작은 했으니까. 그 재능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겠다고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낙방한 거였지."
-심정이 어땠는지.
"잔뜩 기대를 걸고 1월 1일자 신문을 사서 봤거든. 얼마나 낙담을 했던지. 가명이었는데 나중에 소식이 알려져 서울대 문리대 문예지 창간호(56년)에 그 작품이 수록되고, 제법 유명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작품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
이후로도 얼마간 이어진 습작과 투고, 그리고 결혼(62년). 66년 민음사를 열기 전까지를 그는 "긴 룸펜시절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 문득 부끄럽더군요. 약국을 운영하던 아내에게 얹혀 사는 게 미안하고 자존심도 상했던 거죠. 끼적거려 뒀던 작품들을 죄다 찢고 태워 없애버렸어요. 지금은 그게 좀 아까워."
응모작의 한 페이지를 펼쳐 건넸다.
-"(…) 칼날 위에 춤추는 광대가 되어 버린 것은 낡은 얘기가 아니다. 바로 그것이 자유라는 것이었다. 하루살이의 가쁜 숨 속에 그들은 배수진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폭풍을 잉태한 지대(地帶)였다. 간판만 커 가는 도시들과 황폐화되어 가는 농촌들…. 그럴수록 시민들의 자유라는 몽둥이의 뜸질 속에 질식해야 했다."
"이런 거 쓸 때는 정말 신이 났었어. 그땐 내가 글을 좀 썼네, 하하."
지각 당선의 기쁨보다 벅찬 감회와 묵은 회환에 압도당한 듯 인터뷰 내내 박회장의 어투는 회고조(調)로 일관했고, 말이(어쩌면 마음이) 문학으로 기우는 듯 여겨지면 출판을 역성들곤 했다. "출판은 아주 창조적이고 구체적이에요. 문학은 문장으로 남지만 출판은 구체적으로 한 사람이 탄생하고 성공하고 좋은 작가가 되는 그런 구체적인 과정을 상황으로 만나게 됩니다."
-출판을 택한 걸 생애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신춘문예 낙선을 고맙게 생각해왔다고 자서전에 쓰셨다. 문학을 포기한 데 대한 후회나 미련은 없는지.
(잠시 머뭇거린 뒤)"그렇게 얘기하는 게 편하죠. 왜냐하면, 자기 실패에 대해 너무 회한을 갖는 것도 안 좋고, 내 자신에게 그런 메시지를 주는 것도 안 좋고, 또 출판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 나라면 그리 되지 못했을 것 같은 훌륭한 작가들도 많이 발굴했고요. 후회가 없다기보다는 선택을 그리 했다는 얘깁니다. 어찌 미련이 없을 수 있겠어. 자서전 내면서 이거(신춘문예 응모작) 편집부에 던져주고 무수정으로 수록했는데, 다시 읽어보니까 야 정말 잘 썼네 싶더군. 하하하"
이제는 당선작이 된 그의 응모작 주인공 이름은 '맥파로(麥波路)'다. 박 회장이 좋아하는 낱말들을 합성했다는 그 이름을 친구들(남재희 신경림 이어령 등)은 지금도 '어이 맥파로~'하면서 애칭처럼 쓴다고 했다. "지금 보면 비웃음 사기 딱 좋은 치기가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그 이름에 자부심이 있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60년 전의 그 자부심이 지금도 푸른 보리밭처럼 일렁이는 듯했다. 계획을 묻자 그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이런 작품, 맥파로 같은 작품 또 한 번 써보고 싶어요. 써서 부끄럽지 않으면 한국일보에 다시 투고할게요."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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