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만으로 성폭력은 근절되지 않는다."
성폭력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이야기다. 박근혜 당선인의 아동ㆍ여성 폭력 관련 공약들은 처벌은 강화했지만 예방에는 소홀하다는 것이 문제다.
박 당선인의 '안전한 사회' 공약은 크게 수사ㆍ재판 과정 개선, 피해자 치료ㆍ지원 대책으로 나뉜다. 수사ㆍ재판 과정과 관련해 무료법률지원 확대, 진술전문가 양성, 한국판 CSI '성범죄 전담반' 신설, 판결시 양형기준의 하한선 적용사례 개선 등을, 피해자 치료ㆍ지원 대책으로는 통합지원센터 확대, 성폭력상담소 신규지원 확충, 의료기관 및 상담시설의 대도시 밀집현상 개선, 거주이전 지원 강화, 보호자 경제활동 지원 등을 내놨다.
백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력이 일어나는 이유와 성폭력의 종류별 양상에 대해 세심하게 이해하고 만든 대책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백 소장은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바른 성의식을 교육시키고 어떤 게 폭력인지를 가르쳐야 한다"며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새 것을 도입하기에 급급하기보다 있는 제도의 실효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두순 사건'에서 나영이 측 변론을 맡았던 조인섭(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는 'CSI 성범죄 전담반 신설'과 관련해 "성범죄 전담 경찰, 재판부, 검사는 지금도 있지만 인사 이동, 교육 부족 등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가니 사건', '조두순 사건' 등의 변론을 해온 이명숙(법무법인 나우리) 변호사는 무료법률지원(법률조력인) 확대와 관련해 "지금도 법률조력인들이 피해자를 어떻게 도울지 몰라 도움이 안 된다는 경우가 많다"며 "법률조력인 뿐 아니라 검사, 담당 재판부까지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도록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스톱지원센터, 해바라기 여성ㆍ아동센터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대목이다.
피해자 가족들이 바라는 건 뭘까. 가장 절실한 부분은 가족의 심리치료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 아빠(60)는 "19세 미만 피해자의 경우 심리치료 지원이 부모나 피해자에 한정돼 있어(지난해 10월 전 가족으로 확대) 나영이보다 두 살 많은 언니도 가끔 폭력적이거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이지만 치료를 해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거주지나 생계비도 문제다. 성폭행 사건 피해자나 가족의 경우 사건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살던 곳을 떠나고 싶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주 사건'의 윤지 엄마(39)도 "할 수만 있다면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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