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당신의 일이 아니지만 당신의 자녀나 후손들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불행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제쳐두지 마세요. 다시는 피눈물 흘리는 피해 가족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가 제 역할을 해주세요."
2008년 이른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14ㆍ가명)이 아빠(60)와 지난해 7월 이웃집 아저씨의 범행인 '여주 4세 여아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윤지(5ㆍ가명)네 엄마(39)가 2013년 새해 새 정부에 바라는 가장 간절한 소망이다. 상상하기 힘든 고통스런 상처를 견디며 살고 있는 두 부모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12월 24일 한국일보와 만났다.
당시 사건으로 대장과 항문을 잃은 나영이는 2010년 그간 달고 있던 배변 주머니를 떼는 수술을 마쳤지만, 대장이 없으니 서너 시간에 한번씩 변을 봐줘야 하는 후유증을 겪고 있다. 여주 사건의 윤지는 이전과 달리 암기력이 떨어지고 불안감으로 밤에 잠들지 못하는 등의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사건의 그늘 속에 있는 두 부모에게 '폭력 없는 사회'는 가장 절실한 '행복의 조건'이다. 나영이 아빠는 "성폭력이 난무한 사회는 기본이 무너진 사회 아니냐"며 근본적으로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부터라도 유치원에서부터 단계별로 성교육을 시켜 폭력을 줄이려는 노력을 전 사회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 엄마는 "아이가 성폭력을 당하면 온 가족, 친지까지 고통 속에 빠진다"며 "남의 일이라거나 개인의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회 구성원들이 따뜻하게 보듬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1,2년 동안 우리 사회는 아동 성폭행과 여성 살인사건 등 흉악범죄,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등으로 유난히 어두웠다. 성폭력 범죄는 최근 5년 동안 60% 이상 급증해 2011년 2만2,034건으로 2만건을 넘어섰다. 그 가운데서도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 범죄는 총 1,054건이었다. 하루 평균 평균 2.9건 꼴이다. 지난해 상반기 전국 초중고교에서 학교폭력을 경험한 피해학생 수는 32만1,000여명(8.5%)으로 조사됐다. 새 정부에 희망하는 행복의 조건을 물은 한국일보 신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48명 중 38.3%(3위)가 '성폭력·학교폭력·흉악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선택했다.
백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자가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제도를 보완함과 동시에 근본적으로 성폭력을 줄이기 위해 젠더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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