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이 재정절벽 협상 마감시한(2012년 12월 31일 밤 12시) 직전 합의안 도출에 성공했다. 실업률 폭등과 저성장을 유발할 수 있는 재정절벽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수개월 동안 글로벌 경제를 불안에 떨게 한 위험 요소가 일단 사라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대표한 조 바이든 부통령과 공화당 협상 당사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원내대표는 이날 밤 치열한 협상 끝에 부자증세를 골자로 하는 타협안에 전격 합의했다. 상원은 1일 새벽 2시께 찬성 89표, 반대 9표로 타협안을 가결했다.
합의안은 개인 연소득 40만달러 이상, 부부 합산 연소득 45만달러 이상 고소득층의 소득세율을 기존 35%에서 39.6%로 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의회가 증세를 받아들인 것은 20여년 만에 처음이다. 장기 실업수당 지급 기간 1년 연장, 상속자산 500만달러 이상의 상속세율 인상(35%→40%) 등도 합의안에 포함됐다. 마지막까지 논란이 됐던 연방정부 예산(1조2,000억달러) 자동삭감은 일단 2개월 미루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 표결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민주당, 공화당 모두 원하는 것을 전부 갖지는 못했지만 이 합의는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올바른 일”이라며 “하원은 지체 없이 합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원이 관련 법안을 1일 이후 처리할 방침이어서 미국은 이날 형식적으로는 재정절벽에 빠진 셈이 됐다. 그러나 1일이 공휴일인데다 하원이 2, 3일쯤 표결할 것으로 예상돼 실질적 피해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하원에서 몇몇 의원이 합의안에 반대하고 있어 통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번 협상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특히 오바마의 기자회견이 돌발변수로 작용했다. 오바마는 31일 오후 중산층 납세자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가진 기자회견에서 “협상 타결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말했는데 그때는 상원의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와 미치 매코넬 공화당 원내대표가 눈을 치켜 뜨고 36시간째 협상 중이었다. 오바마는 협상 내용을 공개하면서 “의회(공화당)가 기능을 못하고 있다” “지금 의회는 희망이 없다” “의회는 협상의 마지막 1초도 이용할 것”이라는 말로 조롱했다. 오바마의 발언에 공화당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대결의 메시지를 보냈다”며 “그가 우리를 재정절벽에 떨어뜨려 정치 이익을 얻으려 했다면 놀라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협상에 뜸을 들이자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는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재개된 협상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의 부자증세 안을 수용했지만 연방예산 1조2,000억달러 삭감은 협상 시한을 2개월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또 다시 2개월 동안 예산 삭감을 놓고 지루한 공방이 불가피해졌다. CBS 방송은 “축구 공이 골 라인을 넘기 전에 헛발질을 했다”고 오바마를 비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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