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뉴 이어. 새해 선물로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조카에게 물었다. 선물로서야 크리스마스 선물이 제격이지만 우리가 만난 건 이미 깊은 세밑. 조카는 괜찮다며 한사코 사양하다가, 한참 후에야 베이지색 꽈배기무늬 스웨터가 갖고 싶다고 했다.
조카는 곧 6학년이 된다. 사는 곳이 멀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 터라 만날 때면 언제나 부쩍 컸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제 보니 키만 큰 게 아니다. 사달라고 조르기는커녕 사준대도 사양한다. 취향도 제법 어른스럽다. 가슴팍에 동글동글한 동물이 프린트된 옷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자기는 꼬마가 아니라 '어린이'라고 박박 우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어린이가 아니라 소녀가 되어 있다.
하지만 13세는 아무래도 몸에도 마음에도 꼭 맞는 옷을 사기에는 애매한 나이. 아동복 디자인은 성에 차지 않고, 성인 여자 옷을 걸쳐보면 어딘가 모르게 좀 어색하다. 간신히 몸에 맞는 옷을 찾으면 이번엔 원하던 색깔이 아니다.
결국은 색깔과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품과 총장은 그럭저럭 맞고 소매는 한참 긴 스웨터를 골랐다. 그래도 좋아라 하니 다행이다. "내년쯤엔 팔이 이만큼 길어져 있을 거예요." 조카는 접어 올렸던 소맷단을 원래대로 풀어놓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팔다리도 길어지고 마음도 길어져 있겠지. 저 스웨터의 소매만큼 팔이 자라 있을 아이를 생각하자니 어쩐지 코끝이 시큰거린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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