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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개편 안 할 수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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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개편 안 할 수는 없나

입력
2013.01.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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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조직을 뜯어고치는 나라는 세상에 한국밖에 없다. 집권하면 정책보다 조직부터 손대는 나라도 한국 밖에는 없다. 조직을 못 바꾸면 하다 못해 부처 이름이라도 개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우리나라다. 지난 정권이 그랬고 현 정권이 그랬고, 또 새 정권도 그렇게 할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경제총괄부처인 기획재정부다. 헌데 기획재정부 조직을 고치다 보면 그걸로 끝나는 법이 없다. 유관부처인 금융위원회도 건드리게 되고, 금융위원회를 바꾸려다 보면 결국 금융감독원도 손을 보게 된다. 이런 식으로 기획재정부와 그 이웃 부처들은 5년 주기로 합쳤다가 헤어졌다가, 직제를 끌어올렸다가 내렸다가, 또 거기에 맞춰 부처 간판이 바뀌기를 반복해왔다.

시작은 1994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경제정책의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 거대 재정경제원을 출범시켰다. 예산 세제 금융 등 모든 경제정책수단을 한군데로 집중시킨, 전례 없는 거대 공룡부처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환란이 터지고 이 재앙을 막지 못한 비대 부처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자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출범과 함께 재정경제원을 공중 분해시켰다. 예산(기획예산처)과 금융감독(금융감독위원회) 전담부처가 신설됐고, 재정경제원은 재정경제부로 강등됐다. 이 과정에서 예산청과 기획예산위원회가 있었고, 금융감독위원회 조직이 갈수록 불어나고, 재정경제부가 다시 부총리급으로 격상되는 소소한 변화는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 탄생과 또 한번의 대수술이 가해졌다.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10년 만에 다시 합쳐져 기획재정부가 만들어졌고,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위원회로 개명되면서 금융업무를 넘겨 받았다. 대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완전 분리됐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금융위원회는 5년 사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

세상에 이런 정부가 또 있을까 싶다. 국가조직이 무슨 퍼즐게임도 아니고, 이리 맞췄다가 저리 맞췄다가, 붙였다가 떼었다가, 안정과 지속성이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미 재무부는 정부수립 이래 200년 넘게 그냥 재무부다. 대공황을 겪었고, 오일쇼크와 금융위기를 거쳤지만 재무부는 그냥 재무부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래 존속해오던 대장성이 2001년 재무성으로 딱 한번 바뀐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직을 바꿔 좋은 경제정책이 나온다면 백 번이라도 바꾸는 게 낫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당사자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재정경제부가 기획재정부로 바뀌어 대체 한국경제의 무엇이 달라졌고, 금융정책이 금융위원회로 넘어간 뒤로 한국의 금융환경이 대체 얼마나 개선됐다는 말 인가.

박근혜 정부도 예외 없이 정부조직개편을 준비 중이다.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업무를 금융위원회로 넘긴 다음 아예 금융부를 만드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국내금융(금융위원회)과 국제금융(기획재정부)이 이원화되어 있다 보니 정책수립과 집행에 애로가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단언컨대 국제금융을 금융위원회로 이관해도 불편함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중요한 거시정책수단(환율)이 이관돼 종합적 경제운용이 어렵다' '외평채 발행은 기본적으로 재정업무여서 금융위원회가 담당하기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을 터이고, '금융부 설립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는 거센 비판도 나올 게다.

반복되는 정부 조직개편이 남긴 교훈은 하나다. '정답은 없다'는 것. 새 정부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추진하는 미래창조과학부도 작명 타입을 볼 때, 그 다음 정부에선 사라지거나 최소한 명칭은 바뀔 확률이 100%이다.

문제는 사람(인사)과 일하는 방식이지, 결코 조직이 아니다. 조직개편 밑그림 그리느라 골몰하기 보다는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업무방식을 발굴하는 데 집중하는 게 낫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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