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일 만에 충무공 이순신함이 태평양을 돌아 경남 진해로 귀항했다. 지난 9월 14일 해군사관학교 67기 생도들로 구성된 순항훈련전단의 훈련차 진해를 출발한 충무공 이순신함과 대청함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 기항한 후 동쪽으로 북태평양을 가로질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들렀다. 이후 북미와 남미 대륙을 따라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에 이어 칠레 발파라이소까지 항해하였다. 그 곳에서 다시 남태평양을 서쪽으로 가로질러 뉴질랜드의 웰링턴까지 항해하고 호주, 파푸아뉴기니, 중국을 거쳐 진해항으로 복귀한 것이다.
순항훈련전단의 항적을 지도에 그려보면 그 넓은 태평양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돌아온 궤적이 남는다. 필자는 이번 순항훈련 중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멕시코 아카풀코까지 충무공 이순신함과 대청함을 번갈아 타고 해사생도들에게 해양과학기술에 대한 강의를 하며 함께 선상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해양 영토를 지킬 예비 해군장교들과의 만남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승선하기로 한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하니 필자를 반긴 것은 정박 중인 충무공 이순신함과 대청함의 늠름한 모습이었다. 이국땅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는 우리 해군함정과 하얀 제복을 입고 절도 있게 행동하는 해사생도들을 보니 어깨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해사생도들의 순항훈련은 훈련이외의 성과도 있었다. 기항지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현지 정치인과 교민을 초청하여 리셉션을 여는 등 순항훈련전단은 훌륭한 민간외교사절단이었다. 젊은 나이에 목숨을 걸고 우리를 도와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60여년이 흘러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행사에 참석해 "대한민국 사랑해요"를 외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외교가 아닌가 싶다.
문화사절단의 역할도 톡톡히 하였다. 현지인들에게 사물놀이나 태권도 시범 등을 선보이고, 같이 어울리는 장을 마련하였다. '강남스타일'도 비켜갈 수는 없었다. 리셉션의 마지막은 예외 없이 국적을 불문하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말춤을 추며 마무리하였다. 샌프란시스코항을 떠나며 충무공이순신함에 승선하였던 도선사가 하선할 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더니 말춤으로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미국인들의 말춤 인기는 역시 대단하였다.
학자들은 금세기가 해양혁명의 시대가 될 거라고 한다. 해양에는 인류의 미래를 보장해 줄 다양한 자원이 무궁무진하다. 선진국들이 해양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자국의 미래가 바다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제국주의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이 최근 해양영토를 놓고 마찰을 빚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조선업, 수산업, 해운ㆍ항만업 등 바다 관련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춰 해양강국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해양강국이 되려면 해양과학기술력과 해군력 모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의 기술력으로 만든 충무공 이순신함 선상에서 해양강국으로의 발전 잠재력을 보았다.
임진왜란 때 열세의 해군전력으로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이 만약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구축함을 본다면 어떤 감회를 느낄까. 당시의 판옥선이나 거북선보다 월등한 화력을 가진 이순신함에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주변국은 물론 북한보다 군함의 숫자에서 열세인 우리의 해군력을 보고 당시와 똑같은 걱정을 하지 않을까. 우리는 주변 국가에 비하여 아직 해양력이 열세이다. 차이를 줄여나가지 않으면 우리의 생존은 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해양영토를 넘보는 외세를 스스로 막지 못하면 우리는 해양 보물을 잃게 된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1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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