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겨울, 82명의 망명객을 태우고 비밀리에 멕시코를 출항한 작은 요트 '그란마 호'가 1주일 항해 끝에 쿠바 해안에 상륙했다. 선두에 선 이는 '피델 카스트로'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였다.
두 사람은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정권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펼치려 잠입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낡고 작은 배인 그란마 호는 연료가 떨어지며 파도에 떠밀려 좌초했고, 어둠을 틈타 가까스로 해안에 상륙했지만 정부군에 발각돼 큰 타격을 입었다. 살아남은 이는 불과 12명. 이때부터 혁명군과 정부군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 시작됐다. 카리브 해의 험준한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 은신처를 마련한 이들은 게릴라전을 시작하며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외쳤고 불가능하게 들리던 이 말은 2년 후 현실이 됐다.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 그리고 이들과 운명을 같이한 체 게바라가 이끈 혁명군은 라디오 송신기를 활용해 미국의 그늘아래 있던 바티스타 정권을 공격하고 해외에서 지지를 이끌어냈다.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공장을 가동하며 게릴라전을 수행하던 이들은 58년 12월, 수도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276km 떨어진 도시 산타클라라에서 바티스타 정부군과 대격전을 벌였다. 체 게바라를 사령관으로 한 쿠바 혁명군 300여 명은 수십 배의 정부군에 맞서 대승을 거뒀으며, 이 전투로 인해 바티스타는 권좌에서 축출돼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도주했다. 혁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59년 1월 1일 혁명을 승리로 이끈 카스트로는 최고 권력에 올라 외국인의 토지소유를 금지하고 농민에게 몰수 토지를 무상 분배하는 획기적인 농지 개혁에 착수했다. 또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과는 국교를 단절하며 쿠바를 사회주의 국가로 변모시켰다.
또 한 명의 혁명 주역이었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는 혁명정부의 중앙은행 총재와 장관을 역임하며 2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안락한 삶에 머무는 것을 거부했다. 제3세계 해방의 꿈을 안고 쿠바를 떠난 그는 콩고 혁명에 가담한 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다 67년 10월 미국 CIA의 지휘를 받는 볼리비아 군에 의해 사살됐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지만 쿠바 국민들의 사랑 속에 별을 단 베레모와 덥수룩한 구레나룻의 모습은 20세기 저항운동의 상징이 됐다.
53년, 23세의 젊은 변호사로 부패 정권에 맞서 혁명의 길에 처음 들어선 카스트로는 59년 혁명에 성공한 후 권좌에 올라 49년 동안 쿠바를 통치해오다 2008년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초창기 혁명 정신이 사라지고 독재의 시간만큼 경제난에 허덕이는 쿠바는 또 다른 혁명가를 기다릴지 모르겠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