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어려운 이웃을 후원해보는 게 어떠세요?"
2000년 빵집을 운영하던 유성용(48)씨는 대한성공회 자원봉사자에게서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평소 이웃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빵을 만들어 다음 날 새벽 2시30분까지 팔아도 빵이 남았기 때문이다. 보통 남은 빵을 할인해 팔았지만, 끼니도 못 때우는 이웃들에게 나눠 주면 더 뜻 깊을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한 '빵 봉사'가 올해로 벌써 13년이 됐다. 영등포구청, 영등포구 당산1동사무소, 무료급식 전문기관인 성공회푸드뱅크 등을 통해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독거노인과 노숙인들에게 빵을 제공하고 있다. 1년 기준으로 어림잡아 1만 명분, 금액으로는 1,000만원 상당이다. 영등포구는 이런 유씨에게 최근 표창장을 줬다. 유씨는 3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허기라도 달래시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 일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제빵기술을 배워 1984년부터 15년간 서울시청 구내식당에서 일한 그는 99년 퇴직금(3,000만원)과 대출금(1억원)으로 영등포구청 맞은 편에 '유성용 베이커리'를 차렸다. 전형적인 동네빵집이었다. 가난 탓에 17세 때부터 사회 생활한 지 19년만이었다. 그는 "가게를 둘러본 어머니는 서울 한복판에 빵집을 차린 내가 자랑스러워 감격해 했다"고 회상했다.
역세권에 맛도 좋아 개업한 지 2년6개월 만에 1억원의 빚을 다 갚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2002년 3월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바로 옆에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았다. "대형 빵집이 개업한 날 매출이 정확히 반토막 났어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지요."
물러설 수 없었던 유씨는 3,000만원을 대출해 빵집을 리모델링하는 등 변신을 모색했다. 덕분에 하루 평균 150여명이 찾고, 그 중 70%정도가 단골손님일 만큼 입지를 굳혔다. 2008년에는 식품위생 수준을 향상시킨 공로로 서울시장 표창도 받았다.
유씨는 요즘 여느 동네빵집 처럼 불경기를 절감하고 있다. 걸어서 3분 거리 안에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두 곳 더 생긴 탓도 있다. 한창 때 크리스마스 시즌 사흘간 케이크를 500개 넘게 팔았지만, 올해는 150개 정도에 그쳤다. 그래도 봉사를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독거노인들에게 나눠줄 빵을 만들 땐 잡념이 사라집니다. 빵 봉사만큼은 절대로 중단하지 않을 겁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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