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그러나 새롭지 않은 새해다. 충격이 가시지 않는 모양인지, 20대 대학생들이 모인 학기말모임에서도, 40대 고교 동창들이 모인 망년회 자리에서도, 대통령선거에 대한 후일담과 평가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여러 매체와 담론공간에서도, 아마 12월 19일의 결과는 좀더 곱씹어질 듯하다. 그만큼 금번 선거는 승부의 과정이 드라마틱했고, 노무현의 비서실장과 박정희의 딸이 맞붙음으로써 지난 수십 년 간 대한민국의 과거와 또 미래에 관한 '총론'이 결부돼 있었기 때문이겠다.
사람들은 가능한 많은 키워드들을 나열하며 평가에 입을 보탠다. 가계부채와 경제 불안, 반북·반공주의와 안보, 지역분할과 50ㆍ60대의 반란, 친노와 민주당 문제, 안철수 현상과 이정희 등등. 어느 하나 빼놓을 게 없는 듯도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는 불만족스럽고 공허하다. 그 이유는 우선, 대선 결과가 거대하고 복합적인 한국사회의 모순 속에서 과잉 결정된 것일 텐데 한두 가지 원인으로 환원하고 설명하는 말들이 설득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한 가지의 원인은 기실 다른 원인들의 결과이며, 또한 어떤 이유들은 그저 핑계 정도에 불과한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로 평가의 말잔치가 공허한 것은, 앞으로 5년을 어떻게 살고, 또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꿀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과 실천에 대한 논의 없이 한탄과 한숨만으로 이야기가 종결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선 결과로 명백히 드러난 것은, 한국사회가 자기 개혁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젊은이들의 희생이나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불안을 제물로 먹고 누리는 특권동맹과 세대의 지배가 더 강고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가의 자리에서 사람들의 얼굴이 가장 어두워지는 순간들은, 비이성과 몰상식이 민주주의의 진지로 점점 파고들고 영혼을 영영 병들게 하는 언어와 교육이 범람하여, 이런 체제가 한참 더 오래갈지도 모르겠다는 전망이 언급될 때였다.
신자유주의 15년, 이명박정권 5년, 그리고 앞으로 또 5년.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젊은이들 밖에 없겠다. 내가 만난 20대들의 분노와 아쉬움은 대단했다. 알려진 대로 20대들은 노무현이 당선 되던 때보다 더 많이 투표했다. 오늘의 20대는 2000년대 초중반의 그들과 많이 다르다. 훨씬 더 정치적으로 건강해진 듯하다. 이번에 20대들은 다른 세상을 맞기 위해 제 나름대로 궐기했고 뭉쳤다. 그런데 이기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 부모 세대가 보여준 젊은이들에 대한 반동과 '적대'에 대해서 당황해 하고 있다.
젊은 그들은 아직은 약하고 얌전하다. 한국사회를 바꿨던 이전의 20대들처럼 자신들만의 방책과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사실 우리 전체가 아직 무기력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동맹과 사상이 필요하다. 새로운 틀과 세밀한 테크닉도 필요하다.
도대체 어디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해야 할까. 새로운 것은 탄생해야 하고 낡은 틀은 산산조각 깨져야 한다. 기성의 야당이나 진보정당이 아닌, 말 그대로 총체적 수준에서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와 우리 주변도 새로 자세를 갖추고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내기 위한 틀이 돼야겠다. 신자유주의 15년 동안, 저절로 결단과 실천이 부족해졌고, 고립과 관성이 몸에 절었다.
유신 시절도 그랬지만, 역사상 어두웠던 시간들은 한편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연민이 새로운 지성으로 자라난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피나는 노력으로, 젊은이들과 함께, 그렇게 했다.
입술을 깨물고 한편 침잠하며, 또 서로 어루만지고 또 배움을 나누어야겠다. 젊은 후배들과 함께 하고 지켜주며, 민주주의 문화의 근저를 지켜내며 또 애쓰며 기다려야겠다. 누군가의 말처럼 '기초 체력'도 새로 기르고, 누군가의 주장처럼 풀뿌리 시민 정치 교육도 새로 하고, 새로운 대안언론을 만들기 위한 조직도 필요하겠다. 그렇게 공부하고 토론하고 기르며 실천하는 모임을 더 만들어야겠다. 또 우리는 서로 더 자주 연락하고 더 많이 만나야겠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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