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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년차 화물차 운전사… 마흔 사춘기에 시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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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년차 화물차 운전사… 마흔 사춘기에 시 배워"

입력
2012.12.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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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신춘문예, 최고 화제의 인물은 아마도 시 부문에 당선된 이정훈(46) 씨가 될 것 같다. 강원도 평창군에서 보낸 이 씨의 투고작은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아버지, 가족의 애증을 간결하게 표현해 일찌감치 심사위원들에게 낙점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끝낸 후 당선자 통보를 하기 위한 전화통화에서 이 씨는 "20년차 화물트레일러 운전기사"라고 자신을 소개해 자리에 있던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평창군에서 다섯 번째로 경운기를 살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모두 서울에서도 보낸 이씨는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에 매달리느라 4학기 학점 '합계'가 2.0이 안 돼 학점미달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강원대에 다시 입학하여 졸업하고 선택한 직업은 화물트레일러 기사였다.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는 그 길을 택했다.

"학교 잘리고 구치소에 갔다 오며 근골노동에 대한 선망이 생겼어요. 잘 난 세상을 잘나게 움직이려는 경향이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청년시절)는 학벌지상주의라든가 이런 게 싫어서 팔다리 움직여서 먹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동해 삼척과 담양 제천 영월의 공장단지에서 전국 각지 레미콘공장으로 시멘트를 옮기는 것이 그의 일이다. 수하물 중 시멘트를 주로 옮기는 이유는 '노동의 현장'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란다. "몸보다는 노동여건이 열악한 점이 힘들어요. 20년째 운임비가 똑같은데, 이제는 화물차 번호판까지 3,000만원씩 거래돼서 3년 전에 화물차 회사에서 제 번호판을 강제로 떼어갔죠. 화물차는 제 소유인데 말이죠."

그가 시를 쓰게 된 건 40대에 접어들면서라고 했다.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가장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가슴 속은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넘지 못할 산 같은 존재였고, 집안의 헤게모니는 자식세대로 넘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가정의 주도권마저 부인에게로 기울었다.

"마흔 무렵이었는데, 잠이 안 오고 밥도 못 먹겠더라고요. 제 발로 정신과 상담을 하러 갔어요. 고해성사하듯 두 시간 떠들고 나니까 의사가 저에게 남아있는 게 뭔지 물어보더라고요. 40대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바지저고리가 된 느낌이 심했어요."

그때 우연히 듣게 된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강좌에서 고형렬 시인을 만나게 되면서, 이 씨는 시를 쓰며 마음을 달랬다. 그렇기에 그에게 창작은 일종의 힐링이었다. "현실에서 부딪히고 상처받고 깨진 마음을 그대로 적어보려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나오는 시는 보람이었고 기쁨이었죠."

주로 일하는 틈틈이, 트레일러와 식당에서 시를 썼지만 노동현장을 직접 담은 시는 거의 쓰지 않았다. 잘못 쓰면 선전문구처럼 읽히고, 잘 써봐야 80년대 민중시 아류처럼 보여서 피하고 싶었단다.

"저는 기쁘거나 슬플 때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이런 꼴 보려고 사나?'할 때 뭘 쓰고 싶어져요(웃음). 세상에 부대끼면서 힘들면 힘들수록 옛날 살던 강가나 산골짜기, 나를 그렇게 예뻐해주던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골방 같은 데로 가고 싶죠. 돌아갈 집이 없으니까 집을 허공에 짓는 거예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면서 4년 전부터 신춘문예와 공모전에 투고를 시작했다. 노트북에 정리된 80여 편의 시는 고향과 가족에 관한 시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등단작 '쏘가리, 호랑이'를 비롯해 이 씨의 시에서 아버지는 호랑이로 자주 비유된다.

작은 문예잡지 공모전 최종심에서 몇 번 고배를 마셨다는 그는 3년 전 한 지인으로부터 "당선됐다"는 장난전화를 받은 후부터 당선통보를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당선통보 전화통화에서도 "장난하지 말라"며 기자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이씨는 "전화 끊고 나서 30분을 울었다"면서도 여전히 등단이 실감나지 않는 듯 인터뷰 당일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가족과 고향 말고 무엇을 더 쓸 수 있을지 고민"이라면서도 이씨에게 시 쓰기의치유효과는 탁월한 듯 보였다. 짐짓 명랑하게 과거 상처들을 고백하며 들뜬 이씨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신춘문예 수상소감, 미스코리아 수상소감처럼 써볼 게요."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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