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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춘문예 - 희곡] 김성제, '동화동경(童話憧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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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춘문예 - 희곡] 김성제, '동화동경(童話憧憬)'

입력
2012.12.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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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노인, 아이 - 1인 2역

여자(중년), 소녀, 누이 - 1인 3역

배경 어떤 곳.

무대세트는 없다.

단, 필요하면 단을 쌓거나 사다리 같은 간단한 장치로 굴뚝이 놓인 높은 곳을 상징할 수 있다.

일러두기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단 두 배우가 모든 배역을 연기한다.

의상과 관련된 간단한 소품을 활용하여 배역을 구분한다. 예를 들면, 소녀는 두건, 누이는 리본, 여인은 앞치마 같은 것이다.

대, 소도구는 쓰지 않고 모든 것을 배우의 마임으로만 표현한다.

제 1 장

어둠. 좁은 영역을 비추는 파란빛 한줄기.

빛의 영역 바깥에서, 꾸부정한 자세로 빛의 중심을 내려다보고 있는 노인.

그 빛 속엔 보이지 않는 아이가 누워있다.

노인 (너그럽고 평화로운 미소) 이 아이는 지금 잠을 자고 있습니다. 왼손으로 팔베개를 하고, 허리와 다리를 구부린 채, 아주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잡니다. 나는 이런 자세가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등은 굽고, 다리는 바깥쪽으로 휘지요. 구부러진 것들을 억지로 펴려하면 잘 펴지지도 않지만, 고통도 꽤 따른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자고 있는 자세가, 다음 날 일어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려다보며) 하지만, 저는 이 아이의 잠자는 자세를 고쳐주려 하지 않습니다.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 때문이죠. 습하고 추운 어느 날 밤입니다. 아이는 등을 잔뜩 웅크린 채 잠을 잡니다. 나는 다음 날 고통스럽게 일어 날 아이가 걱정되어 발목을 잡습니다. 다리를 펴게 해주려고요. (발목을 잡는 동작) 그러자 아이가 깜작 놀라 깨더니,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보는 겁니다. 아이의 얼굴은 구정물과 그을음으로 시커멓고 더럽습니다.

- 왜? 어서 계속 자려무나. 아직, 한 두 시간은 더 잘 수 있을게다.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감습니다. 감은 두 눈 양끝이 파르르 떨리는데, 하얗고 선명한 눈물 자국이 달빛에 반짝입니다.

- 또 나쁜 꿈을 꾼 게냐? 매일, 그렇게 자면서 울다간 건강 해친다. 자, 마저 잠을 자렴, 곧 일을 하러 나가야 하니까. 다리도 쭉 펴고. 하루 종일 다리를 구부리고 일하는 것이 습관이 돼서 그런 건 알지만, 잠을 잘 때만큼은 다리를 쭉 펴고 자야한단다. 알겠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아이가 다리를 펴고 잠을 잘 수 있도록 발목을 쭈욱 잡아당깁니다. 아! 이 아이는 뼈도 가늘지만, 또래의 아이보다 몸이 작습니다. 또래의 아이가 얼마나 큰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가 작은 게, 어쨌든 중요한 거죠. 게다가 이 아이는 제 누이가 떠난 지 4년이 되어가지만, 도통 자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작고 야위어 가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나는...(한없이 너그럽고 평화로운 미소) 더욱 맘에 듭니다.

아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노인.

빛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며 좁아지더니, 사라진다.

제 2 장

어둠. 노인의 목소리가 차갑고 음산하게 들린다.

- 일어 나.

- 일어나렴.

- 일어나야지.

-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 어서 일어나 일 나가야지, 이 게으른 녀석아!

빠르게 밝아지는 조명.

바닥에 누워있던 아이, 깜작 놀라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난다.

중년의 여자 뒤뚱거리며 등장한다.

여자 그을음이 묻으니깐 저만치 떨어져 있어라. 할아버지한테도 얘기 한 거지만, 아무래도 너한테 직접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내가 니 할아버지한테 일을 주는 건, 니가 다른 아이보다 덩치가 작기 때문에 굴뚝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청소할 수 있다는 네 할아버지 말을 믿기 때문이야.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더구나. 내 말은, 전에 그 아이 보다 니가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틀림없지만, 생각보다 깊은 곳을 청소하진 않고 있다는 말이지. 니가 내 말을 오해해서 할아버지에게 잘못 전달 할 까봐 짚고 넘어가는 거다. (혼잣말로) 괴팍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사이) 팔을 좀 줘보련?

아이 한 쪽 팔을 들어 올린다.

여자 얇구나. 어깨 좀 만져보자. 세상에! 도대체 뭘 먹고 살기에 살이 이렇게 얇은 거니? 이 몸통하며! 한 손으로 쥐어도 쏙 들어오겠다.

여자 아이의 몸을 차례차례 만진다.

아이는 여자가 몸을 만질 때 마다 몸을 뒤튼다.

여자의 손이 아이의 사타구니를 더듬는다.

아이 사타구니를 감추며 물러난다.

여자 (사이) 먹기는 먹는 거니?

아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그래…. (손을 털며) 더럽구나. 괜히 만졌어. 그을음 냄새도 역해. 니가 작다는 네 할아버지의 말을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이니까, 할아버지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말 할 필요는 없다.

아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사이) 뭐 좀 먹을 거라도 주련?

아이 대답하지 않고 굴뚝 청소 도구를 챙기는 동작을 한다.

여자 어른이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애가 싸가지 없이 대답도 안 하면 안 된다. 누가 그따위 아이에게 음식을 주고 재워주는 멍청한 짓을 하겠니? 너도 그걸 잘 알거다. 항상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해. 널 위해 죽은 니 누이를 생각해서라도 말이야.

아이 동작을 멈춘다.

여자 화력이 좋아야 해. 음식이 잘 구워지려면! 끓이거나 삶는 음식을 못 만들게 한 법에 대해서 나는 찬성하는 편이란다. 너는 어떠니?

아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여자를 쳐다만 본다.

여자 네 의견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이야길 하고 싶은 거니까,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거나 뭐든 반응만 하면 된다. 지금처럼 들은 척 만 척, 딴 짓을 하면, 네 가느다란 팔목을 똑! 부러뜨릴 거야.

아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음, 좋은 반응이야. 삶거나 끓이는 건 여러모로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을 끓이고 재료를 익히고…. 여러모로 번거롭지! 하지만, 굽는 건 그냥 연료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니? 물을 끓일 필요가 없으니까, 시간도 최소한 두 배는 절약된다. 게다가 국물 같은 찌꺼기를 바다로 흘려보내지 않으니까 환경 개선에도 일조하고…. (사이) 바다를 본 적이 있니?

아이 바다….

여자 물론, 지금 같은 끈적끈적하고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그런 바다 말고. 팝콘 같은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파란 사파이어 같은 바다 말이다.

아이 파도….

여자 (허공을 응시하며) 나는 너 만한 나이였을 때 마지막으로 본 바다를 잊을 수가 없단다.

아이 아이의 귀에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파도소리.

아이 바다와 파도를 떠올리면, 아이는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가엾은 누이 생각에…눈물을 흘립니다. 검은 그을음으로 새까매진 얼굴 위에, 유독 하얗게 길처럼 새겨진 눈물 자국. 그 위로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서글픈 눈물이 수로를 따라 내려옵니다.

파도소리 커진다.

아이 아이는 알게 됩니다. 누이가 없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자신이 무척이나 많이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굴뚝 밑에서 타고 있는 불길을 향해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이유가 그 바다와 파도, 그리고… 누이 때문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는 겁니다.

여자 그 시절에 바다와 지금의 바다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다른 거지. 그게 다 끓이고 삶는 음식을 너무 많이 한 것 때문이라는 위생부의 주장이 조금 설득력 있다고, 나는 생각한단다. 예술적으로 설명하자면, 끓을 때 생기는 거품이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없앤 거와 마찬가지라는 거다. (아이를 향해 박수를 친다) 정신 차려라!

파도소리 사라진다.

여자 굴뚝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눌어붙은 오래된 그을음과 재를 제거해라. 가뜩이나 스모그다 뭐다해서 공기까지 더러워져서 예전같이 화덕이 뜨겁지가 않아. 그나마 순환이라도 잘돼야 이 장사도 할 수 있지 않겠니? 뭐하나 버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세상이니. 내가 반죽을 하는 동안 재빨리 청소를 마쳐라. (투덜대며) 도대체, 언제쯤이면 내 대신 일 할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번처럼 제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굴뚝 청소에 너는 적합하지 않다고 할아버지에게 말할 거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아이 어떻게… 되는데요?

여자 (웃으며) 구워지는 거지. 네 누이같이!

여자 깔깔대고 사라진다.

아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잠시 얼어붙은 듯 서있다.

암전.

제 3 장

어둠. 노인의 목소리

- 받으렴. 먹어도 돼.

흐릿하고 영역이 좁은 빛 두 개가 나란히 바닥에 떨어진다.

한 빛은 분홍빛이며 다른 하나는 아이의 빛인 파란색이다.

빵이 든 접시와 물주전자를 들고 있는 노인. 부드럽고 인자한 눈으로 빛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노인 이 아이들은 지금,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늘로부터 몇 년 전, 그러니까…. (파란빛을 가리키며) 이 아이가 누이인 (분홍빛을 가리킨다) 이 애와 처음 내 집을 뜯어 먹고 있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파란빛을 가리키며) 이 아이가 일을 하면서 늘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회상이죠. 나는 이 아이가 일을 할 때 마다, 그러니깐 굴뚝에 눌러 앉은 그을음 자국을 솔로 박박 지우는 일을 하며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짓을 하는 건, 꽤 괜찮은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솔질이 이 과거가 떠오를 때마다 더욱 강해지고 빨라지니까요! (사이) 아마, 지우고 싶어서겠죠? 허허허허. (빛을 내려다보며)

- 물론, 뜯어 먹는 게 이 접시에 담아 먹는 거 보?좋다면, 먹던 것을 마저 뜯어 먹으렴.

(돌아서다 멈춘다) 분홍 옷을 입은 아이가 내 바지춤을 잡습니다. 여자아이가 분홍 옷을 입었다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닙니다. (아이의 빛을 가리키며) 이 아이의 생각이죠. 이 아이는 지 누이가 분홍 옷을 입었다고 기억합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색깔이 바뀌곤 합니다. (빛을 손으로 휘젓는다) 자기 기억을 의심하는 거죠. 4년이나 지났으니까요. 색깔이 뭐든 무슨 상관있겠습니까. 지우려고 노력만 하면 되지요. 어쨌든 오늘은 분홍색이네요.

- 자, 먹어라. 먹고 부족하면 얘기 해.

분홍 옷을 입은 계집애가 접시를 받아 갑니다. 그런데, 이것 좀 보십시오. 참으로 기특한 일이 생깁니다. 적어도 나에겐 아주 신통방통한 일입니다. 그러니깐, 나는 남자 아이보다 머리가 하나 정도 큰 이 계집애가 누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집애가, 내가 내민 접시에서 두툼하고 달콤한 고물이 묻은 빵을 집어 들더니, 이러는 겁니다.

- 오빠…. 아-

하하하, 오빠라니!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크기를 가늠하며) 이렇게 작은 아이가 오빠라니. 그러면, 이 조그맣고 가느다란 뼈를 가진 오빠라는 아이는 입을 제비 새끼마냥 벌리고, 자신 보다 더 큰 누이가 내민 빵을 한참동안 오물거리고 힘들게 씹어 삼키는 겁니다.

노인 마치 아이가 빵을 받아먹듯이 입을 크게 벌린다.

(입에 한 가득 담고) 그리곤, 그 분홍빛 옷을 입은...

분홍빛이 초록빛으로 바뀐다.

이런! 초록색으로 바뀌었군요. 어쨌든, 그 계집애는 가느다랗고 조그만 오빠가 빵을 다 삼킬 때를 기다렸다가 (꿀컥 삼킨다) 다시,

- 오빠…. 아-

노인 또다시 입을 크게 벌린 후 오물거리며

접시의 빵이 다 없어질 때까지 계집애는 단 한 조각도 먹지 않고, 지 오빠가 입에 든 것을 목구멍으로 완전히 넘길 때까지 흐뭇하게 쳐다봅니다.

노인, 목이 멘 듯 기침을 한다.

급하게 물을 찾아 마시는 노인.

- (초록빛을 쳐다보며) 물은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귀하니까.

천천히 물을 내미는 노인.

계집애는 망설입니다. 자신이 이 물을 받으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듯 했습니다. 예감이 좋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빵에 목이 멘 오빠의 기침 소리가 심해지자 계집애는 마침내 물을 받아 오빠에게 먹입니다.

노인, 아이의 빛에 물을 따른다.

빛이 조금 밝아진다.

나는 계집애를 쳐다봅니다. 계집애도 나를 쳐다보지요. 눈이 꼭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구슬 같습니다. 잠시 동안 입술을 꼭 다물고 나를 쳐다보던 계집애는 당돌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시키는 건 다 할 거예요. 대신, 오빠에게 일을 가르쳐 주세요. 이 세상에서 오빠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요.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계집애의 입술 사이로 앞니가 반짝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 앙증맞고 깜직한 계집애가 내가 시킨 걸 다 해낼 때 마다, 나는 새 발목 같이 가느다란 뼈를 가지고 있는 오빠에게 빵을 주었습니다. 매일매일 목이 멜 정도로 많이요. (그러나 손가락으로 아주 작은 크기를 만들어 보인다) 그리고 그 놈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쳤습니다. 사실 귀찮았죠, 가르치는 것 따윈! 오빠란 놈은 너무 멍청해서 새 것을 가르치면 전의 것은 몽땅 잊어버리는 놈입니다. 다른 아이에 비해 가르치는데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답니다. 짜증이 났죠. 나는 계집애에게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단호하게! 그랬더니 그 계집애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럼,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거예요." (혼자 되씹어 본다) 아무 일도… 아무 일도라… 구슬 같은 눈을 반짝이며 앞니를 살짝 드러내고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습니까! 나는 결국 그 귀찮은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킨 건 뭐든 다 하겠다고 글자처럼 또박또박 말하던, 그 효모 냄새 나는 계집애 말에 나는 대항할 수 없습니다.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남자는 여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진리죠! 이 나이가 되면 기억하려고 애를 써도 깜박깜박 까먹습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란 사실을 말입니다.

노인, 아이의 빛과 마주하고

- 솔 쥐는 법을 알려주마.

이놈은 힘이 없어 청소용 솔을 오래 쥐고 있을 수 없습니다.

- 엄지에 힘을 주고 팔목을 살짝 구부려 보렴.

답답합니다. 이놈은 팔목을 구부리라고 하면, 엄지에 힘을 주는 것을 까먹습니다. 엄지에 힘을 줘야한다고 말하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팔목을 구부리는 것을 잊어먹지요. 그럴 때마다 나는 가르치는 거고 뭐고, 그냥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오면, 내가 그려준 약도를 들고 내가 일러준 대로 완벽하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계집애는 지친 표정을 감추며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 시키는 건 다 할 거예요. 대신, 오빠에게 일을 가르쳐 주세요. 이 세상에서 오빠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요,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효모냄새가 나는 계집애는 내가 지 오빠에게 정성스럽게 일을 가르쳐주기를 바라며 내 방으로 들어가 나를 기다립니다. 나는 마다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보시다시피 너무 정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부드럽고 온화한 웃음. 길게 웃는다) 나의 이러한 끈질긴 노력으로 세월이 얼마간 흐르자 이 못난 놈도 배운 걸 조금씩 덜 잊어 먹게 되긴 했습니다.

빗소리

(손바닥으로 빗물을 받는다) 이건 비가 아닙니다. 이놈이 기억하는 지 누이의 눈물이죠. 어느 멋진 날, 나를 정말 완벽하게 만족시킨 계집애가 이 놈 앞에서 엄청 울어댔답니다. 계집애는 은행처럼 반짝이는 앞니 두 개가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미친 것처럼 웃기까지 했지요.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신통하게도 멍청한 이놈은 조금씩, 조금씩, 가르쳐준 대로 일을 아주 열심히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놈은 결국 이 도시에서 가장 굴뚝을 잘 타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주 독보적이었지요. 이 도시는 절대로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닙니다. 중구난방이지요. 굴뚝 크기는 물론이고 각도도 아주 제 멋대로 입니다. 언젠가부터…내 알 바 없기에 연도 같은 건 외우고 있지 않습니다만, 하여튼, 뭔가 끓이고 지지고 삶고 해서 찌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법적으로 해 먹을 수 없게 되었을 때부터, 화덕이 필요해지고 연기가 잘 빠질 수 있는 굴뚝이 생겨났습니다. 아시다시피 공공으로 무언가 공급 받던 시대는 너무 오래 전 이야기지요. 다 알아서 해야 합니다. 사던가, 뺏던가, 훔치던가! (사이) 골치 아프네요……. 어디까지 이야기 했죠? 아! 그래요. (아이의 빛을 가리키며) 이놈은 아주 쓸모 있었답니다. 누이가 지 음식까지 거둬 먹여서인지 힘도 세졌어요. 아니, 그렇다고 무거운 것을 들거나 그러지는 못합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솔을 놓치지 않고, 어떤 각도의 굴뚝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손을 쓰지 않고도 (두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동작) 오르고 내려가지요. 도저히 사람이라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굴뚝도 이 애는 잘도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사실, 나의 많은 경쟁자들이 아이를 고용해서 굴뚝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애만큼 좁은 굴뚝을 잘 타는 놈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지요. 예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나는 그걸 처음부터 알아봤지요. 가느다란 뼈대에 쉽게 구부러지는 몸, 빠르게 아무는 상처, 무엇보다 뜨거운 걸…(사이) 아마, 아이의 누이도 내가 그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챘던 거 같습니다. 예, 그 앤 똑똑했으니까요.

초록빛이 사라진다.

노인, 나가려다

근데, 그 누이란 애는 왜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던 걸까요? 모든 빵을 지 오빠에게 다 먹였죠. 저놈은 아무리 먹어도 살도 찌지 않고, 자라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아쉬워요. 좀 더 오래 데리고 있을 수 있었는데……, 예쁜 생각을 하는 예쁜 아이는 꽤....비싸거든요!

노인, 부드럽고 온화하게 웃는다.

노인의 웃음을 삼킬 듯 커지는 빗소리.

암전.

잠시 후, 다시 떨어지는 파란빛

그 속에서 빠르고 강하게 솔질을 하고 있는 아이.

빗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암전과 함께 사라진다.

제 4 장

어둠 속에서 들리는 호루라기 소리.

그리고 소녀의 노랫소리

노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 됐다, 그만해라. 그걸로 충분한 거야. 너무 깨끗하게 해 주면 안 돼. 주기적으로 부를 수 있도록 적당히 해야 한다. 어서 올라 와. 내 얘기가 안 들리니? 어서 올라 오라니까. 어허! 안 들려? 거기까지만 하고 올라오라니까! 어허, 그 놈 참….

갑자기 세게 휘두르는 채찍 소리가 들린다.

점점 거세지는 채찍 소리.

암전.

제 5 장

여자의 집.

멍한 눈으로 초점 없이 서있는 아이.

여자가 뒤뚱거리며 수건을 들고 들어온다.

여자 벗어라.

고개를 돌려 여자를 쳐다보는 아이.

여자 모르는 거 같은데, 등에 피딱지가 옷하고 엉켜있어. 그냥 두면 큰일 나. 벗어! (사이)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닦아 줄 거야. 약도 변변한 게 없으니까 치료는 할 수 없지만 닦기라도 해야 덧나지 않지. 벗어, 어서!

아이 (가려고 하며) 굴뚝 청소를 다 하지 못했어요.

여자 그만 하라고 해도 굳이 청소를 하더니,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니?

아이 그냥… 안 들렸어요.

여자 할아버지 말이 안 들렸다고? 그 말은 귀가 먹고 있다는 거니?

아이 아니요. 그냥….

여자 딴 생각을 했구나.

아이 ……

여자 무슨 생각을 하니?

아이 아무 생각도 안 해요.

여자 헛것이 보이니?

아이 헛것…이요?

여자 그래. 뭔가 타는 웰염藉璿?냄새를 배출하지. 바보 같은 것들! 나쁜 것을 흘려보내지 않기만 하면 깨끗해질 거라고 생각해. 하늘을 봐라. 회색이지 않니? 예전엔 바다가 파랬듯이 하늘도 파랬다. 수평선 너머로 둘이 붙어있으면 어떤 것이 어떤 것의 파란 색이었는지 전혀 알 수 가 없었어. 그것뿐인 줄 아니? 바다에 파도가 그렇듯이, 하늘에도 팝콘 같은 하얀 구름이 있었다. 지금 저 위에서 교미하고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는 덩어리들 말고, 커다란 봉투 속에 달僿構?담겨있는 진짜 팝콘 같은 구름 말이야. 그 아름답고 부드러운 것들이 없어진 이유가 굴뚝으로 쉴 새 없이 뿜어 나오는 더러운 뭔가를 태우는 연기 때문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겠니! 니 뇌도 그것 때문에 엉망이 된 거란다. 너는 굴뚝에서 그걸 그냥 마시잖아. 코하고 뇌는 바로 연결되어 있거든. 직통이지. 그래서 헛것이 보이기도 한단다. 그래, 뭣을 봤니?

아이 본 것은 아니고… 들었어요.

여자 안 들렸다며.

아이 네… 하지만 들었어요.

여자 그래. 무슨 소리를 들어서 할아버지의 호루라기 소리를 못 들었다고 얘기하는 거지? 무슨 소리를 들었니?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매를 맞게 될 소리를 못 들은 거냐고.

아이 노래… 소리.

여자 (사이) 확실히 뇌가 이상해졌구나. 도대체, 어제 청소한 집은 뭘 태웠기에 네가 그 모양이 된 거니? 됐다! 나는 정신이 돈 사람하고는 말도 나누고 싶지 않고, 만지기도 싫다. 굴뚝도 오늘은 청소하지 마라. 대신 네 머리가 멀쩡해질 때, 그때 하는 걸로 하자.

아이 그럼, 지금은 뭘 해야 하지요?

여자 나한테 묻는 거니? (어이없어) 글쎄, 뭘 하면 좋을까!

아이 가만있으면 안 돼요. 쉴 새 없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은…그러니까… 굴뚝에 올라가야겠어요!

여자 재미있구나. 그래, 너 같은 사람은 어찌된다든?

아이 그러니깐…

여자 구워진다든?

아이 네?

여자 네 누이처럼?

아이 네…?

여자 할아버지가 그랬니? 일을 쉴 새 없이 하지 않으면 구워진다고?

아이 …….

여자 니 누이는 구워져서 어찌됐을꼬? 깔깔깔깔! 그래 알았다. 쉴 새 없이 일하고 싶으면 그래야지. 그래야 구워져서 사람 입에 안 들어가지. 나가봐라. 가서 일을 해. 굴뚝을 쑤셔.

아이 빵이 됐나요?

여자 뭐가 말이냐?

아이 누이가 구워져서 사람 입에 들어갔다고…….

여자 나는 네가 할아버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혼이 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한 거란다.

아이 할아버지 말을 듣지 않으면 구워지나요?

여자 깔깔깔깔! 내가 그랬니? 내 생각엔 구워지기 보다는 피투성이가 될 것 같은데? (웃음을 멈추고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쉬! (인기척을 느끼며 경계한다) 거기 누구요? (아이에게) 문을 열지마라. 분명 무언가를 빼앗으려고 온 놈일 거다. 잠깐, 아니다! 내가 깜박했다. 오늘 오기로 했지! (신이 나서) 오늘부로 지긋지긋한 반죽은 끝이다.

여자, 아이를 지나 뒤뚱거리며 걷는다.

문을 열어준다.

여자 그래, 너로구나. 올 거라는 이야긴 들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게 사실이니? (웃으며) 깔깔깔깔! 내가 제 정신이 아니구나. 귀머거리 병신한테 내가 뭘 묻고 있니! (손을 안으로 뻗으며) 들어 와.

아이 앞에 떨어지는 분홍빛 조명.

암전.

제 6 장

어둠 속에서 들리는 누이의 음성

- 오빠… 아-.

- 시키는 건 다 할 거예요. 대신 오빠에게 일을 가르쳐 주세요.

- 많이 먹어. 그리고 내 대신 바다를 가… 바다를 가… 바다를 가!

메아리처럼 누이의 음성이 울리면서 밝아지면

아이, 바닥에 귀를 대고 열심히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여자, 몸을 뒤뚱거리며 화가 나 이리 저리 움직이고 소리친다.

여자 이 빌어먹을 년아! 도대체, 며칠 째인데 아직도 배분을 못 하는 거니! 손에 힘을 줘! 힘을 줘서 치대란 말이다! 이렇게! 이렇게! 이런 젠장! 내가 이렇게 다 할 거면 뭐 하러 널 부리고 있냐! 당장 반죽을 화덕에 올려! 미쳤지…귀머거리 병신한테 내가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여자, 화를 내며 퇴장한다.

아이, 몸의 위치를 바꿔 굴뚝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더욱 귀를 기울인다.

잠시 후, 소녀가 반죽을 들고 들어온다.

아이, 몸의 위치를 바꿔 더 깊이 굴뚝 안으로 들어간다.

소녀, 화덕에 불을 지핀다.

붉은빛이 소녀 앞에 떨어진다.

화덕에 연기가 일자, 아이가 기침을 한다.

놀라 입을 막은 아이.

소녀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화덕에 반죽을 올리는 소녀. 그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쪼그리고 앉는다.

잠시 동안 불빛을 바라보던 소녀, 노래를 한다.

아이 (깜작 놀라) 이 노래는! 그래요. 며칠 전, 할아버지의 호루라기 소리를 삼켜버렸던, 어떤 집에서 들었던 노래입니다. 아! 소녀가 노래를 합니다. 나는 놀랍니다. 소녀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합니다. 확인해야겠어!

아이, 재빨리 기는 동작을 하더니 물구나무를 서 화덕 위에서 소녀를 바라보는 형상을 한다.

노래를 계속하던 소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화덕 위를 쳐다본다.

소녀 비명. 하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아이 소녀가 나를 발견하자 나는 너무 놀랍니다. 평소 같으면 굴뚝을 타고 다시 올라가겠지만, 나는 너무 당황하여 그만 화덕 아래로 떨어집니다. 벌겋게 달아 오른 반죽 틀은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반죽은 엉망이 됩니다. 내 옷은 불에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나는 뜨겁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놀란 소녀가 뛰어 옵니다. 소녀는 자신의 머리 수건을 풀어 내 옷에 붙은 불을 끕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엉망이 된 반죽을 제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불에 뜨겁게 달궈진 틀이 치- 소리를 내며 내 손바닥을 지집니다. 소녀는 내 손바닥의 흉측한 화상을 봅니다.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소녀가 걱정할 까봐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프지 않아. 괜찮아. 진짜 아프지 않아. 그렇게 울 필요 없어. 그게 내 비밀이야. 내 두 번째 비밀. 첫 번째 비밀은… 나중에 말해 줄 게. 난 비밀이 엄청 많아. 비밀은 지켜야 해.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비밀이야?

소녀,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깜박인다.

아이 노래… 말도 할 줄 아는 거지? 그런데 비밀인거지! 나랑 누이처럼 말이야. 말하고 그렇게 예쁘게 노래할 줄 알면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아? 어떻게 하는데? 목을 잘라서 팔 거야! 그지?

소녀, 가만히 아이의 입술을 바라본다.

아이 비밀이 몇 개야? 두 개? 세 개? 얼마나 많아? (사이) 노래 해 봐. 다시 듣고 싶어.

소녀, 고개를 흔든다.

아이 조금만. 아줌마가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해도 좋아. 그래도 난 들을 수 있어. 그게 내 세 번째 비밀이야. 응? 노래 해. 아까처럼. 응?

소녀, 어렵게 입을 움직인다.

아이의 귀에 들리는 노랫소리

아이 나는, 나는 누이가 사라지고 난 후로, 이렇게 예쁘게 노래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작고 말라 부러질 것 같은 등뼈를 딱딱한 바닥에 누이고 잠 못 들어 뒤척일 때, 내 가슴을 토닥거리며 불러주던 누이의 노래. 그 노래처럼…이 노래는…너무나…너무나…그때! 더럽고 추한 돼지의 소리가 들립니다. 잔뜩 화가 난 암퇘지가 소리를 지르고 부엌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만 해! 노래를 그만 해! 그러나 소녀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줄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순간은 겨우 1초? 2초? 나는 소녀가 노래할 수 있다는 비밀이 알려질 경우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발각 될 경우, 어떤 것이 더 최악일까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도망갑니다!

아이, 재빠르게 기어서 도망간다.

주위 어두워진다.

조명 속에 갇힌 듯 움츠리고 있는 아이.

여자의 미친 듯이 화가 난 소리.

여자 (목소리) 이런, 이게 다 뭐야! 이 미친년이 반죽을 엉망으로 만들었네! 야, 이 병신 같은 년아! 틀이 떨어지는 것도 못 보고 뭐하고 있었던 거니? 이 개 같은 년이 사람이 들어 온 지도 모르고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아가리는 왜 그렇게 처 벌리고 오물거리고 있어! 입 닫아 이 년아!

여자가 소녀를 욕하며 때리는 소리.

아이 그리고 한참 동안, 아줌마가 소녀를 매질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벙어리는 맞을 때도 소리를 못 내는 걸까요?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소녀 대신 아야…아야…아파요…하며…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아이의 얼굴에 깊게 새겨진 눈물 자국을 따라 눈물이 흐른다.

암전.

제 7 장

여자의 집.

무릎을 꿇고 바닥을 닦고 있는 소녀

노인, 접시에 든 빵을 먹으며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소녀, 일어나 절뚝거리고 퇴장한다.

노인 쟤는 원래 병신인가?

여자 (뒤뚱거리며 들어온다) 원래 병신이래.

노인 다리를 전다는 얘긴 못 들었는데.

여자 다리병신은 아냐. 다리병신이었으면 좀 더 쌌겠지.

노인 때렸나?

여자 때리긴... 근데, 어쩐 일로 오늘은 예까지 내려와서 말을 걸어?

노인 왜 내려오긴, 요새 화덕 불이 시원찮다며?

여자 뻔뻔하긴! 청소를 제대로 안 해 주니까 시원찮지, 왜 시원찮겠어!

노인 우리 아이 솜씨가 예전 같지 않나?

여자 걔 솜씨가 예전 같지 않은 게 아니라, 할아범 맘씨가 여전한 거지!

노인 (알면서도 모른 척) 응?

여자 똑바로 해. 내 굴뚝을 다른 데처럼 새 모이 주듯 적당히 설렁설렁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노인 요새 그렇게 사업하면 오래 못 가지.

여자 그래, 오래 못 가지. 과자 굽고 빵 굽는 집이 골목만 돌면 하나 건너 하나야. 니미럴! 법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 거 아냐!

노인 경쟁이 심해지지. 사람들은 가난해서 점점 사먹을 돈도 없는데 말이야.

여자 그러게.

노인 그렇지?

여자 그니깐, 똑바로 하란 말이야. 장사도 안 되는데 자꾸 청소 부르게 하지 말고!

노인 내가 이 집 굴뚝 청소를 대충 시켰다는 말 같이 들리네.

여자 응. 그 말이야!

노인 난, 자네가 그걸 좋아해서 그러는 줄 알고 그랬지.

여자 무슨 소리야?

노인 우리 애가 자주 오는 거.

여자 (부르르 떨며) 이…영감탱이가!

노인 화내지 마. 뭐 눈엔 뭐만 보여서 그래. 허허허허!

여자 (소녀가 나간 방향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년아, 뭐하는데 꾸물거리고 있어! 어서 반죽하지 않고!

노인 반죽할 재료는 어떤가?

여자 뭐 어때?

노인 부족하진 않느냐는 말이지.

여자 뻔하지. 것도 경쟁이 심해졌어!

노인 내가 재료에 보탬이 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자 무슨 소리야?

노인 전에 그 계집애는 어땠나? 부드러웠을 게야. 그렇지?

여자 이…영감이!

노인 (부드럽고 온화하게 웃는다) 생각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걸세.

여자 까불지 마쇼. 저 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만 시킬 거야. 요새 내 손가락 관절이 이만저만 한 게 아니거든!

노인 반죽만 해서 그런 건 아니잖은가.

여자 뭐야?

노인 우리 애 뼈가 다른 아이에 비해 좀 가늘지?

여자 개새끼…! 애나 패지 마!

노인 (능청스럽게) 치료해 줘서 고맙다는 얘기야.

여자 나도 알아, 그 말인 거!

여자가 분에 못 이겨 퇴장한다.

노인, 접시의 빵을 씹으며 주위를 한 바퀴 돈다.

잠시 후, 소녀가 들어온다. 고개를 숙이고 노인을 지나치는데

노인, 소녀의 손을 잡는다.

놀라는 소녀

노인 (입을 크게 벌리고) 말을 못 들어서. 그래서 잡았다. 놀랐니?

소녀 고개를 흔든다.

노인 그래. (접시를 내밀며) 먹으련?

소녀 고개를 흔든다.

노인 그러렴. 근데, 그거 아니? 내 집은 문과 지붕이 진짜 과자와 빵으로 되어있다. 이게 싫으면 그걸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소녀 눈이 반짝인다.

노인 내 집으로 와서 살면 좋다. 사정이 안 되면, 가끔 찾아오든가. 이런 건 너같이 예쁜 애가 먹는 게 아니란다.

노인,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간다.

소녀, 접시와 노인이 나간 곳을 번갈아 바라본다.

뒤돌아서는 소녀 앞으로 아이가 굴뚝에서 내려온 듯 물구나무서서 거꾸로 등장한다.

아이 난, 노래만 들을 수 있다면 굴뚝 안에서 하루 종일 거꾸로 매달릴 수 있어. 이게 내 네 번째 비밀이야.

소녀, 웃는다.

아이 난 너의 두 번째 비밀을 알아.

소녀, 무슨 말인지 모른다.

아이 (똑바로 서며) 왜 아무것도 먹지 않아? 씹는 척 하면서 뱉는 걸 봤어. 배 안고파?

아이, 바닥의 접시를 소녀에게 내밀자, 소녀 뒷걸음질 친다.

아이 너도 이게 싫어? 내 누이처럼?

소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 왜? 왜 싫어? 혹시, 너도 너 대신 살아주길 바라는 사람 있어? 너도 그래? 내 누이처럼?

소녀, 영문을 몰라 아이를 쳐다본다.

아이 (사이) 노래 해 줘. 대신, 이 건 내가 먹어줄게.

소녀, 수줍게 웃으며 입을 벌린다.

노래 소리가 들린다.

아이, 소녀에게서 조금 떨어져 앉아 노래를 듣는다.

아이 저 소녀의 노래 소리는 나에게만 들립니다. 소녀도 그것을 알고, 나도 그것을 압니다. 소녀가 노래하는 것은 나만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나는 다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다섯 번째 비밀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아는 순간 바로 잊어버립니다. 내가 멍청하고 지능이 낮은 이유는 다섯 번째 비밀 때문입니다. 누이는 내가 바보 같고 등신이 아니라면, 보이지 않는 걸 보는 내 비밀로 인해 나는 아주 나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나는 멍청하지 않습니다. 나의 여섯 번째 비밀입니다. 그리고 잠을 자는 동안 이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해 내는 것, 그래서 진실의 악몽을 꾸는 것, 그것이…

소녀, 두건을 벗는다.

소녀는 과거의 누이가 된다.

누이 일곱 번째 비밀이야, 너의.

아이 누이?

누이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돼.

아이 (운다) 엄…마…

누이 그렇지만, 아무도 알아선 안 돼. 그게 너와 나의 첫 번째 비밀이야.

아이 싫어. 싫어!

누이 이 세상을 살려면 그래야 해. 내가 나이가 많은 아줌마고, 병든 여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 오빠를 돌보는 누이에게 더 많은 것을 주지.

아이 알아! 난 다 알아! 어차피 더러운 세상, 더 살 필요 없어!

누이 예쁘고 착한 우리 아들. 자, 아-.

아이 안 먹어! 이게 어떤 건지 난 다 알아. 이건, 이건, 이건 내 누이야! 모든 사람의 아들! 딸! 엄마가 낳은, 모든 아이가 낳은 엄마야! 더러워! 안 먹어!

누이 엄마는, 우리 아기가 꿈을 꾸는 게 싫어. 모든 걸 알아버리거든……. 엄마랑 약속해. 쉴 새 없이 일하는 거야. 많이 피곤하도록. 그럼, 꿈을 꾸지 않을 거야. 엄마는 우리 아기가 열심히 일 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깐, 쉴 새 없이 일을 해. 그러려면, 이게 무엇이든 먹어야 해. 내 것까지 다. 엄마는 어차피 곧 죽을 거야. 그러니 아무리 더러운 음식이라도 남기지 말고 악착같이 먹어. 그래서… 그래서 오래오래 살아. 그리고 언젠가, 이 세상이 좀 더 살만해지면, 엄마 대신 하얀 파도가 팝콘처럼 부딪히는 바다로 가렴. 그리고 데어도 뜨겁지 않고 쓸려도 쓰리지 않는 네 몸을 바다에 깊숙이 적셔 봐. 그럼, 너도 엄마처럼, 이 엄마처럼 아프고, 쓰리고, 슬픈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꼭 느껴보렴. 아무리 세상이 더럽고 추해졌어도 이 엄마의 아들로, 내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꼭 한 번 느껴보렴. 자,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우리 아들… 약속해.

아이 나도 엄마 따라 갈래.

누이 그래, 먼 훗날에.

아이 엄마!

누이 바다로 가렴. 약속 해.

아이 엄마!

누이 착하지, 우리 아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여덟 번째 비밀이야. 알았지?

아이 (울면서) 응.

엄마와 아기가 하는 둘 만의 약속 의식.

누이, 아이에게서 물러나 두건을 쓰면 다시 소녀가 된다.

노래하는 소녀.

아이 원래,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잊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녀의 노래를 들으면, 나는 깨어있는 동안에도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추함도, 아름다움도, 진실도, 과거도, 미래도…오늘도.

소녀,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내민다.

소녀의 손을 잡는 아이.

소녀, 노래를 멈춘다.

아이 네 앞에선 난 눈뜨고 울 수 있어. 슬퍼서 너무 슬퍼서! 예전엔 잠들면 울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고 울 수 있어. 그래서 여기가… (소녀의 손을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대며) 아파. 그리고 행복해… 내가 살아있어서.

소녀 눈을 감는다.

파도소리.

아이 (놀란다) 바다에서 왔어? 그래? 거기서 왔어?

소녀 입을 벙긋거린다.

소녀의 말이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온다.

아이 응. 난 바다에서 태어났대. 엄마는 날 임신했을 때 흰 백조가 그려진 작은 배를 타고 아빠를 만나러 가던 중이었는데, 폭풍우가 몰아 쳤었나봐. 나를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어. 내 생각에 엄만 틀림없이 인어가 됐을 거야. 난 엄마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들었던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아직도 기억 해.

아이 화덕 앞으로 간다.

화덕의 불꽃처럼 빨갛게 달아오르는 빛이 무대에 떨어진다….

아이 너에게서 멀어지면 나는 다시 모든 걸 잊게 될 거야. 어쩌면 영원히 바다에 못 가겠지? 그러니 내 곁에 있어 줘.

아이, 화덕의 빨갛게 달아오르는 빛 속으로 들어가 손을 내민다.

망설이는 소녀.

아이 여기를 벗어나려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거야. 하지만, 내가 널 지켜줄게. 내가 널 감싸고 내 살을 태워서 널 뜨겁지 않게 할 거야. 내 엄마가 온 몸으로 날 지켜냈듯이 내가 널 그렇게 해 줄 거야. 나한테 고마워하지 마. 앞으로 네가 그렇게 살면 돼. 그게 다야.

망설이던 소녀, 아이에게 뛰어간다. 그러다 잠시 멈춰 선다.

소녀, 바닥에 놓여있는 접시의 빵을 바라본다.

소녀, 빵을 집어 들더니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에 넣어 씹어 삼킨다.

그리고 뛰어가 아이의 손을 잡는 소녀.

아이, 소녀를 온 몸으로 감싸 안는다.

타오르는 불꽃 소리 위로, 파도 소리가 부서지듯 타고 오른다.

암전.

밝아지면.

노인, 손에 접시를 들고 들어온다.

바닥에 놓인 접시에 빵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다.

노인, 못마땅한 표정이다

노인, 주변을 둘러보며,

노인 애야 어디 있니? 받으렴. 먹어도 돼.

노인, 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분다.

호루라기 소리가 길고 가느다랗게 퍼져간다.

암전.

- 끝.

■ 인터뷰

"부치러 간 우체국서 제목 고쳐"

당선작 '동화동경'은 다소 파격적이고 신선하면서도 신인의 미숙함이 엿보인 작품이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적 설정 때문에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당선자가 20대, 그것도 아직 소년 티를 벗지 않은 문청(文靑)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한국일보사로 달려온 당선자 김성제(45)씨는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그것도 대학로에서 잔뼈가 굵은 20여년차 연극인이었다. 김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꿈같은 아름다운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책도 희곡보다는 동화를 많이 읽는다"고 말했다. "대학 때부터 무대가 좋아 연극판에서 살았어요. 처음에는 아동극, 성인극 구분이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배우로 활동했고요. 장르 구분하지 않고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다 보니 그 시절(90년대)에는 대학로에서 뮤지컬 한다고 선배들한테 혼도 많이 났어요."

아동극, 정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며 연극쟁이로 살아온 김씨는 현재 극단 성시어터라인 대표로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1995년 연극배우 김태경씨와 결혼한 뒤 극단에서 연출가와 배우로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다. 김씨는 "연출 잘했다, 연극 잘 만들었다는 얘기보다 대본 좋다는 얘기가 더 좋아 투고했다"며 "연극은 시간예술이라 공연 후 사라지는데 반해 희곡은 책으로 남는데다 문학의 한 장르로 가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법의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 올해 한예종 아동청소년극과에 입학했다. 희곡을 읽고 쓰는 시각이 달라지면서, 지문과 대사를 쓰는 방식도 달라졌다. 김씨는 "연극을 너무 모르고 20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20대 친구들과 함께 전투처럼 연극을 만들면서 많은 걸 배운다"고 말했다. 당선작은 '전투처럼' 학기말 과제를 하면서, 틈틈이 쓴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에게 호평을 받은 제목 '동화동경'은 우편 투고를 위해 작품을 들고 간 우체국에서 고쳤다고 한다.

"매년 12월 되면 투고하고 혼자 설??楮? 투고작들이 소재나 스타일이 다 다른데, 하고 싶은 공연 방식이 다양하다는 게 제 장점이자 단점 같아요. 언젠가 선 굵은 작품을 쓰겠지만, 한동안은 장르 구분하지 않고 쓰고 싶습니다."

■ 당선소감

"보듬는 법 익숙해질쯤 뜻밖 선물"

당선통보 후, 기쁨은 10분이고 이후는 걸음마다 무겁습니다. 돌이켜보니, 당선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동경(憧憬)의 시절은 인내와 결의의 시간입니다. 어떤 해는 좌절했고 어떤 해는 분노했으며 어떤 해는 체념했습니다. 갈망은 막연한 동경(憧憬) 속에 살면서 드물게 신열로 시달릴 때 두 번의 희망으로 위로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쉽다', '머물렀다'. 그 해의 단어는 신춘의 상처였습니다. 그리움에 사는 것도 한때니 달게 살자 마음먹고 스스로 보듬는 법에 익숙해질 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부족하고 정리되지 않은 글 밉게 안 보시고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희곡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은 제게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두루 보고 넓게 생각해서 깊은 글로 갚겠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연극하게 해주신 최영애 선생님, 매주 아름다운 동화를 읽어주신 임정미 선생님, 늙은 제자 마다 않고 받아주신 한예종 교수님들. 너무 고맙습니다. 아청 선배님들과 동기들, 너무 기뻐해줘서 감동 먹었어요. 연극하면서 못되게 굴어도 웃음으로 받아주시는 여러 선생님, 선배님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극단 후배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네요. 태경, 현희, 도윤, 도근, 그리고 연극하는 아들 때문에 항상 마음 졸이며 사시는 부모님, 이제야 처음으로 사랑한다 말합니다.

당선의 무게감이 며칠을 앓게 하였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이 문우님들의 백필거필의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털고 일어나겠습니다.

■ 심사평

연극적 상상력과 차별화된 참신성 단연 각인

완고한 무대의 형식과 조건 속에서 기발한 상상력과 거침없는 사유를 펼쳐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예비 극작가들에게 "연극"이 바라는 것은 구태의연함을 깨고 부단히, 독창적이고 참신하라는 것이다. 총 112편의 응모작 중 이용주의 '맨발', 송희준의 '영분식', 이성호의 '묘도', 김성제의 '동화동경' 네 편이 최종심에서 거론되었다.

'맨발'은 이야기의 구성과 흐름이 무난하면서도 강한 서정적 울림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내용의 통속성과 연극성을 고려한 몇 가지 설정 등이 작위적으로 내비쳐 못내 아쉬웠다.

'영분식'은 흔치않은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과감하게 차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무대 활용과 예술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재미와 동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극이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묘도'는 소재 측면에서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지만, 급격히 주제를 잃고 잡설화 되는 이야기와 소재의 상징적 무게를 단막으로 지탱하지 못한 한계성이 아쉬웠다.

'동화동경'은 연극적 상상력과 차별화된 참신성이 단연 돋보였다. 동화적 인물과 사건, 무대를 통해 부조리한 세상의 근원과 고독을 시적으로 통찰해내는 내공이 만만치 않아 보였고, 손쉬운 해석을 견제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극을 끌고 가는 극적 구성 또한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무대 이미지가 지나치게 난해하고 추상적이란 점과 자칫 위험해 보일 수 있는 문어체의 대사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맨발'과 '동화동경'을 놓고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폭발력 있는 연극성과 향후 희곡의 발전 가능성 등에 높은 점수를 받은 '동화동경'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동화동경'은 공연으로 만들어졌을 때의 성공 여부와 함께 모든 것이(연출, 배우, 스텝) 신춘처럼 기다려지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조은민 인턴기자 (숙명여대 국어국문과 4년)/●사진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사진=조영호기자 you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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