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한다. 토끼는 여유만만하게 100m 뒤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결과는? 단연코 토끼가 진다. 토끼가 100m를 따라잡으면 그 사이 거북이는 1m를 간다. 토끼가 1m를 다시 따라잡으면 거북이는 또 꾸물꾸물 1cm를 간다. 둘 사이의 간격은 끊임없이 줄어들지만, 토끼는 결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수열의 극한 개념과 관련된 이 이야기는 제논의 역설 중 하나이다. 실제로 경주를 하면 토끼가 거북이를 이기겠지만 논리상으로는 그럴 수 없기에 역설이라 불린다. 하지만 새해를 맞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지금, 나는 이 역설이 시간감각에 대한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열 살 때 스무 살이란 까마득한 어른이었다. 스무 살 때 서른 살은 한참 어른이었다. 서른이 되자 마흔 살은 내가 겪은 것을 이미 겪은 적 있어 가끔 조언도 해 주는 그냥 인생 선배들이었다. 이제 마흔이 된 나에게 쉰 살은? 나이듦에 대해 조금 더 아는, 약간의 친구 같다.
십년은 예나 지금이나 십년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간격은 점점 좁아진다. 그러나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듯,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조금씩 더 늙어가고, 조금씩 더 친구에 가까워지지만, 할머니의 등 뒤에 엄마가 있고 엄마의 등 뒤에 내가 있다. 그리고 나의 등 뒤에는 나의 어린 친구들이 있겠지. 우리는 모두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극한값은 무엇일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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