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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 살해혐의 군부 출신 인사들 법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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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 살해혐의 군부 출신 인사들 법정에

입력
2012.12.3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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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칠레의 전설적인 민중 가수 빅토르 하라에 대한 살인 혐의로 전 군부 인사 8명이 기소됐다. 하라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지 39년만이다.

칠레 법원은 전 군부 인사 페드로 바리엔토스와 휴고 산체스를 살인 혐의로, 나머지 6명은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하고 국제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AFP통신이 29일 전했다. 이중 바리엔토스는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최근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를 확보해 기소를 결정했다"며 "조사를 끝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간이 왔다"고 밝혔다.

하라의 가족은 "기소 결정에 만족한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들을 대변하는 인권변호사 넬슨 카우코토는 "하라는 아옌데 정권의 문화적 아이콘이었다"며 "시간이 흘렀지만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라는 피노체트가 주도한 쿠데타에 의해 전복된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의 주요 인사 중 한 명이었다. 하라는 공산주의자로 '평화 속에 사는 권리' '나는 아만다를 기억한다' 등의 대표곡을 통해 사랑과 저항을 노래했으며 '아옌데의 문화대사'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컸다.

하라는 그를 두려워한 피노체트 정권에 의해 1973년 9월 11일 쿠데타 직후 체포돼 수용소로 개조된 경기장 에스타디오칠레로 끌려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근처 버려진 땅에서 44발의 총상을 입고 고문 흔적이 남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기타를 치던 그의 손은 개머리판으로 맞아 으스러진 상태였다. 하라는 이후 피노체트 정권의 억압으로 희생된 5,000여명의 정치범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거론됐다. 에스타디오칠레는 하라 사망 30주기인 2003년에 그의 이름을 따 빅토르하라국립스타디움으로 개명됐다.

증거 부족으로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 하라의 죽음이 다시 빛을 본 것은 2009년이었다. 에스타디오칠레에서 정치범을 총살하는데 가담했다는 전직 군인의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해 12월에는 하라의 장례식이 다시 열렸고 수천 명의 칠레인이 참석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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