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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행복지수 점검]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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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행복지수 점검]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

입력
2012.12.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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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굴지의 대기업 개발팀에 근무하는 최석영(가명ㆍ36) 과장. 그는 회사가 올해 최고의 실적을 올린 덕분에 조만간 나올 상여금도 작년 수준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올해 연봉이 처음 9,000만원을 넘게 된다. 최 과장은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으니, 회사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주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에게 올 한해 동안 근로시간을 가늠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2,700시간 안팎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는 "바쁠 때는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일했다"고 답했다. 주 40시간의 기본 법정근로시간에다 연장근로 한도 월 52시간, 휴일근로 한도 월 40시간 중 약 60~70%를 채웠다는 추산을 토대로 한 결과다. 최 과장은 "그나마 회사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강제로 쉬게 한다거나 연말에 남은 연월차를 소진하게 유도해 근로시간이 다소 줄었다"며 "해외출장 때는 한달 넘게 휴일 없이 오전 8시 출근, 새벽 1~2시 퇴근을 반복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무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2008년 이후 멕시코에 최장 근로시간 1위를 내주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 근로자는 OECD 평균보다 300시간 넘게 일한다(2011년 2,090시간). OECD 통계에는 근로시간이 짧은 시간제 근로자도 포함돼 있어, 현실에선 최 과장처럼 연 2,700시간 넘게 일하는 근로자들이 태반이라고 봐야 한다.

통계로만 보면 한국 근로자들의 근무 여건은 나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2년 200시간을 웃돌던 상용근로자 월평균 근로시간이 올해 10월엔 179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통계는 어디까지나 통계일 뿐, 근로자들의 체감도와는 괴리가 크다. 모 대기업 오성훈(가명ㆍ37) 차장은 "기업의 매출 목표는 해마다 상승하는데 인력이 대폭 늘지 않는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줄어들 리 없지 않느냐"며 "작년, 재작년과 비교해서 근로시간이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다"고 단언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최근 6개 업종의 근로시간을 조사한 결과, 10개 업체 가운데 9개(88.6%)가 법정 연장근로 한도인 주 12시간을 초과해 근무했고, 4개 업체(39.9%)는 휴일에도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 적은 인력으로 최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사용자 측의 인식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토ㆍ일요일 근무를 연장근로에 포함하지 않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은 변함이 없고, 운수업 금융보험업 통신업 청소업 등 12개 업종에 대해 주 12시간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할 수 있도록 한 '특례업종'을 축소하자는 의견이 무성하지만 이 역시 고쳐지지 않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사용자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도 문제지만 비정규직 및 여성 근로자에 대한 차별까지 더하면 무역 1조달러,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경제대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노동환경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경기 용인의 한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인 유수영(가명ㆍ28)씨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혹독히 체험하고 있다. 올해 초 1년 계약을 한 그는 최근 겨울방학을 앞두고 "매일 출근해야 방학 중 월급이 지급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씨는 "정교사의 경우 방학 중 일주일에 하루만 나와도 월급을 받는데 기간제라고 매일 출근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동료 기간제 교사는 출산휴가를 갔던 정교사가 방학 중 복직한다고 해서 해직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21세기 신노예'로 불리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더 심각하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기본이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과 성과급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임금근로자 3명 중 1명인 비정규직의 임금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규직의 60% 안팎에 불과하다.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현실에서 남녀 임금차별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개인소득(1,669만원)은 남성(3,638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직업별 남녀 소득 격차는 더욱 커져 농림·어업 숙련직 여성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연간 215만원으로 남성(2,330만원)의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 여성들은 전체의 69.9%가 1년간 2,000만원 미만을 벌었으나, 남성은 그 비율이 28.3%에 그쳤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비정규직, 여성 등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겠다고 공약했다. 비정규직을 대폭 줄이고, 근로시간도 2020년까지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박 당선인이 공약을 실현하려면 연장근로 관행 개선 등 제도적인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며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이를 지키지 않은 사용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나누는 업체에 대해서는 과감히 지원하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조언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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