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영세 자영업자와 저소득 고령층 등의 과다 부채문제에 대해 재정 투입의 필요성을 인정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는 기존 입장에서 선회한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신용불량자 부채 탕감 등의 공약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KDI는 30일 내놓은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주요 현황과 위험도 평가'보고서에서 전체 금융소비자 3,162만명(2001년 7월 현재) 중 50만명을 임의 추출하는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 소득 대비 금융채무 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는 과다채무자 비율이 2008년 5.2%에서 2011년 6.0%로 급증하는 등 가계부채의 질이 크게 악화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50대 이상 저소득층, 자영업자,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취약계층은 조건이 열악한 비(非)은행권 대출 의존도가 커짐에 따라 금융위기와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면 50만명이 추가로 금융 연체자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KDI는 이들 계층의 연체 급증이 사회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유사시 가계부실 완화를 위해 취약계층에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50대 이상 채무자에 대해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자영업자 증가 등과 맞물려 부실 위험이 확대될 수 있으므로 금융 안정성과 더불어 일자리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권고는 KDI가 올해 8월 '가계부문 부채상환여력 평가'자료에서 취약계층의 부실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재정 투입 방안은 배제한 채 ▦실태파악 강화 ▦대출구조 건전화 등 원론적 대응만 주문한 것과는 대비된다. 이에 따라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 마련 등 가계부채 해결에 적극적인 박 당선인을 의식한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KDI는 "(1,000조원에 육박하는) 전체 가계부채 대부분은 상위소득 계층에 집중된 만큼, 가계부채 문제가 거시경제 전반을 위협할 가능성은 낮다"는 기존 입장은 고수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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