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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의 별별이야기/12월 31일] 그리고 다시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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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의 별별이야기/12월 31일] 그리고 다시 꿈을 꾸자

입력
2012.12.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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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올 한 해 동안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 생각이 먼저 난다. 수많은 아폴로 키드를 만들어냈고 그들을 과학자로 이끌었던 닐 암스트롱은 지난 8월 25일에 죽었다. 만 82세. 자신의 이름이 붙은 전파망원경으로 관측을 했던 전파천문학자 버나드 로벨은 8월 6일에 죽었다. 8월 31일까지 살았다면 만 99세 생일을 맞이했을 것이다. 영국 BBC 방송에서 'The Sky at Night'라는 프로그램을 50년 넘게 진행했던 천문학자 패트릭 무어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90세 생일을 맞아서 이 프로그램은 특집 방송을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나를 전파천문학자로 또 과학저술가로 이끌었던 사람들이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하워드 프리드먼과 레슬리 마틴이 지은 라는 책에 흥미로운 내용이 소개되어있다고 한다. 1,500명의 인생을 80년간 추적한 결과 가장 오래 사는 사람들의 직업 중 하나가 과학자였다는 것이다. 천문학을 공부한 나로서는 그저 고맙고 기쁠 따름이다. 과학자들은 왜 오래 살까? 그러고 보니 앞서 언급한 과학자들도 모두 장수했고 평화롭게 임종을 맞이했다. 어쩌면 과학자들이 늘 자연의 경이로움을 마주하며 꿈을 꾸고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리적 의심을 바탕으로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어느 마을, 무엇인가에 홀린 듯 어머니들이 부엌칼을 정성껏 갈고 있는 동안 아버지들은 은밀하게 동네 아이들을 우물 속 비밀 장소로 대피시키고 있었다. 보름달이 뜨자 어머니들은 미친 듯이 부엌칼을 들고 아이들 사냥에 나섰다. 광란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오자 어머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고 영문도 모른 채 대피했던 아이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 어릴 때 즐겨봤던 일본 만화 '요괴 인간'의 한 장면이다. 또 다른 마을, 언덕 위에 있는 천문대에서 밤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이 발사되었다. 그때마다 그 빛 줄기의 표적이 되었던 마을 아이는 꿈을 잃고 얼이 빠진 좀비가 되어버렸다. 그곳에 아이들의 꿈을 뺏어가는 미치광이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결과는 늘 해피엔딩이었다. 정의로운 요괴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문득 젊은이들의 꿈을 앗아가는 미친 기성세대가 날뛰었던 2012년 대한민국의 겨울이 겹쳐서 떠올랐다.

올해도 많은 노동자들이 타살 같은 자살을 했다. 얼마 전에는 외대 노조위원장이 벼랑 끝에서 목숨을 내던졌고 빈소를 지키던 부위원장은 심근경색으로 숨졌다고 한다. 혹자는 노동계 내부의 변화를 기대하기엔 막막했던 상황에서 정치적인 변혁을 통한 외부로부터의 변화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희망을 걸었다가 좌절하고 절망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 죽음을 가볍게 입에 올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합리적 의심조차도 막연한 꿈조차도 용납되지 않는 척박한 현실이 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는 한탄 정도는 해야겠다. 살기 위해 죽어야 하는 세상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숙명처럼 시 한편이 이메일로 배달되어 내게로 왔다. "나는 문명이 디자인한 딸이다 / 내 가슴둘레엔 그 흔적이 문신처럼 박혀있다 / 세상 수많은 딸들의 브래지어 봉제선 뒤편 / 늙지 않는 빅브라더가 있다". 김나영의 시 '브래지어를 풀고' 중 몇 구절이다. 현실에서는 꿈을 앗아간 미치광이가 날뛰더라도 빅브라더가 눈을 부릅뜨고 응시하더라도 살아서 그 세월을 버텨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시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꿈을 꿔야 미래가 있다. 달력에는 언제나 끝이 있어서 좋다. 새해가 되면 헌 달력을 버리고 새 달력을 벽에 걸고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으니까. 빅브라더가 채워놓은 브래지어도 벗어 던지고 헌 달력도 떼어내고 그 빈자리에 빼앗긴 꿈을 찾아서 그 꿈을 다시 걸자. 요괴 인간은 없다. 스스로 꿈꿔야 한다. 안녕 2012년. 새해엔 다시 함께 새 꿈을 꾸자.

이명현 SETI코리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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