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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31일] 12월 3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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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31일] 12월 32일

입력
2012.12.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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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날이라 떠들썩했던 12월 21일이 지난 지 열흘이 되었다. 종말의 해라는 소문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던 2012년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마야문명과 힌두문명의 역법이 올해를 지구의 끝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거대한 외계우주선 3대가 지구에 근접하는 시점이 2012년일 거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예언은 모두 빗나가거나 잘못 해석된 것일까. 종말론이야 고래 적부터 시시때때로 반복되었으니 그냥 그런 해프닝이 또 한 번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시대의 불안과 비참을 넘어 새로운 시작을 바라는 마음이 종말론을 면면히 키워온 양분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나름 종말의 이미지가 있다. 언제부턴가 마음속에 각인된 장면. 그날은 불길에 휩싸이거나 물바다가 되지 않는다. 대신 보신각의 종이 둥둥 울린다. 새해를 맞은 기쁨이 온 누리에 퍼져야 할 시간. 그러나 우리는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새해가 아니라 12월 32일이 왔다는 것을. 다음날은 12월 33일, 그 다음날은 12월 34일이라는 것을.

끝을 알 수 없는 끝의 시간. 새해의 시작을 기대할 수 없는 연말의 시간. 오늘은 종말의 해 2012년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이 지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어도 되는 걸까. 나의 종말론에 따르면, 그럴 수가 없다.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2012년일 테니까. 어디까지 나빠져야 바닥에 닿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한, 종말의 해 2012년은 여전히 무겁고 둔하게 진행 중일 테니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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