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상생 가능한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6일 대선 이후 첫 정책 행보로 기업인들을 찾았다. 중소기업ㆍ소상공인 대표들과 먼저 마주한 그는 “앞으로 정부 지원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재편하고 대기업과의 관계도 확실하게 고쳐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반면 대기업 대표들에겐 “글로벌 해외 기업과 경쟁 해야지 골목상인 영역을 빼앗으면 안 된다”고 압박했다. 지난 1년 간 MB정부의 노력에도 불구, 우리 사회 동반성장 현주소를 차기 권력자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올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올 3분기 국내 1,718개 기업의 매출액은 1년 전보다 5.9%, 총자산은 전분기보다 2%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 못하는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 비중은 오히려 작년 31.6%에서 34.6%로 3%포인트나 늘었다. 잘 나가는 대기업 실적을 빼면 대다수 중소기업의 성적은 오히려 뒷걸음친 셈이다.
양극화는 증시에도 반영됐다. 금융위원회 분석 결과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초 이후 약 2년 동안 6%가량 하락하는 데 그쳤지만, 삼성전자(약 47% 상승)와 현대차(27% 상승)를 제외하면 지수 하락폭이 15%나 됐다. 전체 기업의 부진이 극소수 대기업에 가려져 자금조달 창구마저 왜곡시키고 있는 셈이다.
동반성장위원회의 노력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불공정행위 엄단에도 불구, 중소기업인들의 인식은 여전히 싸늘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10월 설문조사에서 중기 사장 300명 중 92%는 ‘대ㆍ중소기업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ㆍ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및 시장 불균형에 대해선 91.7%가 ‘심각하다’고 여겼고, ‘경제민주화가 최우선 과제’라는 답도 73%에 달했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의 인식은 여전히 시대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이유와 중소기업 경영여건 악화 이유에 대해 대기업은 각각 ‘기술개발 노력과 제품경쟁력 향상’(49.7%), ‘경기 영향’(46.3%)을 꼽았다. 같은 질문에 ‘대기업의 중기 영역 침범’(61.6%),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41.7%)을 내세운 중소기업과는 사뭇 다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대기업의 시혜를 유도해 하도급 거래관행을 개선하는 대ㆍ중소기업 간 ‘수직 네트워크’는 어느 정도 진전을 봤지만 중소기업의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새 정부는 대기업ㆍ공공영역이 함께 나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을 돕는 ‘수평 네트워크’ 확장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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