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원했지만…'빨갱이·종북좌파' 이념전에 삶과 직결된 모든 이슈 묻혀버려 정치실종상황 방치할 수 없었다야권 대선 패배… 보수 향한 당부"저 놈들 집권땐 큰 일" 기류 만연 나도 진보 진영도 함께 반성해야보수 승자의 아량은커녕 '못질' 표현의 자유 존중 등 떳떳한 길 가길'자유인 표창원' 행보는아내 "그만 나서라" 걱정 하는데… '프리허그'로 낙담한 분들 위로 중 소신껏 말하며 5년 후를 준비할 것
제18대 대선을 전후해 두 후보를 제외하고 가장 주목을 끈 이는 표창원(46) 전 경찰대 교수였다.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란 수식어가 있던 그의 이름 앞에 이제 한편에서는 '이 시대의 진정한 보수'라는 칭송, 다른 한편에선 '보수를 가장한 선동꾼'이라는 비난을 붙이고 있다. 발단은 지난 11일 불거진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 그는 국정원 여직원이 오피스텔 문을 걸어 잠근 채 조사에 불응하는 상황을 40시간 넘게 방치한 경찰의 무기력한 대응을 질타하며 "'즉시 강제'권을 발동해 문을 부수고 들어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공보수주의자'를 자처한 그는 보수 진영의 공격에 "진정한 보수라면 '종북 좌빨' 주장을 집어치우라"는 일갈로 맞섰고, 16일에는 "아무런 구애 없이 글 쓰고 말 할 자유를 얻기 위해" 경찰대 교수직을 내던졌다.
선거 이후에도 그는 화제를 몰고 다녔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부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독재자의 딸' 이미지를 벗으라"는 당부의 글을 띄우는가 하면, 선거 패배로 실의에 빠진 '48% 국민'을 위로하는 '프리 허그(Free Hug)' 행보를 이어갔다.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광주에서 22일 연 '프리 허그' 행사에는 3,000여명이 몰리기도 했다.
지난 24일 만난 표 전 교수는 "경찰을 아끼는 마음에 고언을 던졌다가 뜻하지 않게 여기까지 왔지만 후회도, 두려움도 없다"고 했다. "'자유인 표창원'으로 소신껏 말하고 글 쓰면서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트위터 팔로워 수가 그새 8,000여명에서 8만3,000여명으로 10배 이상 늘었고, 팬클럽도 생겼다. "안철수 떠난 자리에 표창원 있다"는 말까지 나오던데, 부담되지 않나.
대중매체나 트위터에 제 이름이 많이 회자되고 있긴 하지만, 실생활에 변화를 준 것은 별로 없어 크게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대선 국면에서 열심히 뛰신 분들이 이제 다 끝났다 생각하고 지쳐 있는 사이 그 빈 공간에 도둑놈처럼 슬쩍 들어와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분들이 쌓아놓은 지지나 관심을 쏙 빼앗은 것 같은 느낌은 좀 있다.
-'프리 허그'를 통한 이른바 힐링 행보가 화제다.
선거 직전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 프리 허그를 약속했다. 원래 공약은 '투표율 77% 달성시 광화문 광장, 80%를 넘으면 전국 주요도시 순회'였다. 투표율이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75.8%도 대단하지 않나. 그동안 저를 응원하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선거 결과에 낙담한 분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었다.
-'프리 허그' 행사는 언제까지 계속하나.
30일 대학로에서 영화 '레 미제라블'을 단체관람하는 분들을 마지막으로 안아드릴 생각이다. 원작 뮤지컬을 워낙 좋아해 영국 유학 시절 두 번 봤고, 최근 한국어 초연도 봤다. 프랑스혁명기 민중들이 핍박 받고 쓰러지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이, 대선 패배 충격에 휩싸인 분들에게 카타르시스와 힐링 효과를 주리라 믿는다. 아내는 이제 그만 설치고 먹고 살 걱정 좀 하라는데, 이번 한번만 더 하겠다고 했다.(웃음)
-트위터에 "표창원 완전 새됐어. 저 짓이라도 안 하면 뻘쭘하잖아"라는 글도 있다.
어떤 분은 '허그 앵벌이'라고 하더라.(웃음) 시민들께서 준 선물들 사진과 감사의 글을 띄웠더니 '백수 됐으니 저런 거라도 받아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광주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보수 진영에선 "봐라, 표창원 빨갱이 맞잖아" 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
내려가는 차 안에서 트위터를 보니 행사 2시간 전부터 줄을 설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 광주 분들께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어 5ㆍ18 영령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노래를 함께 불렀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이 노래 어디에도 공격적이거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이 없다. 80년대 운동권에서 불렸다는 이유로 빨갱이 노래니 뭐니 한다면 문화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그런 비난 따위는 전혀 겁나지 않는다.
-23일 블로그에 띄운 '자칭 보수들에게 고함'이란 글에서 '패자들의 힐링 과정에 기웃거리며 차마 인간으로 해선 안될 악다구니 짓은 그만두어라'고 썼다. 많이 시달렸나 보다.
저?정신적으로 무척 강해 아무리 심한 욕을 해도 끄떡없다. 인터넷에는 제 아내와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하겠다는 말도 떠돌고, '반공보수주의자'라는 저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아버지께서 공산당이 싫어 혈혈단신 월남한 사연을 공개한 것까지 꼬투리 삼아 '북에서 온 빨갱이'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승자의 아량을 보이기는커녕 저를 지지하고 격려해준 분들, 특히 가슴에 품은 한을 어쩌지 못해 저를 붙들고 오열하던 광주 분들에게 악독한 인신공격을 하는 걸 보며 분노가 치민다. 보수를 자처하려면 좀 당당해져라.
-많은 이들이 당신에게 열광하는 것은 그간 보아 온 보수 인사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보수주의의 요체는 무엇인가.
보수(保守)는 말 그대로 현재의 사회구조를 인정하고 유지하되, 시대 변화에 따라 바꿀 것은 바꾸고 보수(補修)해 나가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의 현 질서는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이고, 그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다. 헌법 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등을 위해 제한할 경우에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가. 권력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감옥에 가고 수많은 언론인들이 언론자유를 위해 파업을 하다가 해직 당했다. 자유민주주의, 보수주의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분단국가이니 당연히 안보가 중요하지만, 자칭 보수는 안보만을 내세워 다른 모든 가치를 짓밟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제1원칙인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무한 보장하면서 국가안전보장과 개인 권리 보호,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법적 장치를 갖추는 것이 '당당하고 떳떳한 보수'가 가야 할 길이다.
-그간 경찰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사건은 수없이 많았는데, 국정원 의혹 사건으로 교수직까지 내던진 것을 보며 솔직히 의아했다. 이 사건에 그렇게까지 집착한 까닭은 뭔가.
그간 축적된 것들이 터졌던 것 같다. 이번 사건은 이미 가득 찬 물잔을 넘치게 한 마지막 물 한 방울이었다고 할까. 80년대부터 가깝게는 이명박 정부 5년간 겪었던 일들, 특히 용산참사와 쌍용차, 강정 사태 등을 지켜보며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동안 경찰의 법 집행 논란이 있을 때마다 경찰과 정부를 대변해 인권단체, 인권변호사와 싸우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용산참사 때는 TV토론에 차마 나갈 수 없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밝혔지만 참사를 부른 경찰 진압은 명백히 잘못됐다. 용산참사와 이번 사건을 놓고 경찰이 강제 진입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따져보라. 이번 사건에서 발생할 손실이라면 문짝 하나 부서지는 정도지만, 용산에서는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설 수 없었지만 가슴 아팠던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팡 하고 터진 것 같다. 저의 행동이 조금이나마 부동층의 마음을 움직여 정권교체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애초부터 야권 후보를 지지했다는 말인가.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기보다는 변화를 원했다. '빨갱이, 종북좌빨 척결'을 외치며 안보 불안을 야기하면 삶과 직결된 모든 이슈들이 묻혀 버리는 정치 실종의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새누리당에서 혁신의 바람을 일어나 진정한 보수 정권의 탄생이 가능했다면 그쪽을 지지했을 거다.
-경찰대 교수직 사임은 불가피했나.
경찰대는 특수한 조직이다. 경찰 간부가 될 소수 정예를 길러내는 곳이고, 경찰을 지원하고 지지하고 보호해야 할 싱크탱크 같은 곳이기도 하다. 여기 몸담으면서 정치적 발언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건 사치다. 첫 글 올리고 파장이 커지자 전화기에 불이 났지만, 일절 받지 않았다. 받는 순간 그분들의 호소나 압력에 제가 굴복하게 되거나, 거부하면 적대적인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되니까. 그래서 블로그에 '제 휴대폰은 (투표일인)19일까지 고장입니다' 하고 올렸다.(웃음)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아내는 좀 충격을 받더니, 이내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저를 너무 잘 아니까.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아빠가 경찰대 교수인 걸 무척 자랑스러워했는데 왜 그만뒀냐며 울었다. 아빠가 전보다 더 유명해졌어, 했더니 그제서야 좀 수긍을 하더라.(웃음) 부모님도 제가 어려서부터 한번 고집을 부리면 못 꺾는다는 걸 잘 아시니까 '믿는다, 잘 헤쳐가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전화 끊고 나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경찰대가 이번 일로 소위 '멘붕'상태라고 한다. '경찰대 없애라, 수사권독립 어림없다'는 등의 욕설과 비난이 쇄도했다는데.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정말 죄송하다. 다행히 제가 접한 학생들 반응은 "고맙다, 자랑스럽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들이라고 비난의 소리를 ?들었겠나. 하지만 "경찰 다시 봤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으니까, 경찰이나 경찰대가 권력의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데 대해 고마워하는 것 같다. 물론 졸업생들 중에는 욕설을 퍼부으며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마주치면 사람 대접 안 하겠다'는 후배들도 있다.
-박근혜 당선이 확정된 순간 '나 죽었다'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나.(웃음)
솔직히 투표율이 높아 됐구나 싶었는데, 결과 보고 한동안 멍했다. 하지만 죽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웃음) 제 신조가 '정정당당'이다. 해병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해병처럼 교육받고 자라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가 '잘못이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라, 변명하지 말라'는 거다. 그 덕에 빨리 마음을 정리해 다음날 바로 박근혜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와 함께 당부의 글을 띄우고 힐링 행보에 나설 수 있었다.
-야권이 패배한 원인이 뭐라고 보나.
우리는 정의, 민주주의, 역사와 미래, 이런 것들을 이성에 호소하고 설득하려 했고, 상대방은 지면 죽는다, 야당이 집권하면 빨갱이 세상 된다, 이런 불합리한 공포감에 의존했다. 한마디로 이성이 본능적인 공포감에 졌다. 거기에 더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비판이 쏟아졌듯이, 저 역시 잘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저렇게 속사포처럼 공격해대는 걸 보니 똑똑한 것 같긴 한데, 빨갱이 아닌가 싶고, 저 놈들 집권하면 큰일 날 것 같은 공포감을 갖게 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어 반성을 많이 했다. 진영논리를 떠나서 정권교체를 바랐던 이들이 되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상대를 적대시하고, 우리가 집권하면 끝장낸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한스럽고 불만도 있겠지만, 선거는 지면 죽는 게 아니라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경쟁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이성이 승리할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역대 대선에서 누굴 찍었는지 밝힌 걸 보니 이번 선거를 빼면 적중률 100%더라. 한편에선 김대중, 노무현 찍은 놈이 무슨 보수냐는 비판도 하는데.
87년, 92년 선거 때는 경찰대와 경찰 안에서 '변화보다 안정 아니야?' 이런 말을 들으며 느낀 무언의 압박이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그 후의 선택은 그만큼 성숙한 결과였다. 특히 93~98년 영국 유학(엑시터대 경찰학 석ㆍ박사) 시절 많은 걸 깨달았다. 공산주의자라고 대놓고 말하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우리 기준에는 종북좌빨이나 다름없는 노동당이 집권하는 걸 보며 충격에 빠졌다. 내가 그동안 한반도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보고 다 듣지 못하고 살았다는 걸 깨닫자 고민도 깊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됐고, 이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80년 광주의 아픔도 치유될 수 있겠다 싶어 주저 없이 지지했다. 제게 100만표가 있었다면 그 표 다 드리고 싶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가 싫어하는 권위주의를 집어 던진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너무 멋있고 좋았다.
-이명박 대통령을 찍을 때는 어떤 기대를 했나.
참여정부 시절 완장 찬 듯했던 일부 '친노' 세력의 행태, 검찰개혁 실패 등을 보며 크게 실망한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에는 기대한 것도 없었지만, 5년간 참 암담했다. BBK 문제만 해도 처음엔 잘 알지도 못하고 정치공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BBK 문제 제기를 한 사람들 다 잡아넣는 것 보고 그게 아니구나 싶었다. 제가 프로파일러 아니냐. 감옥 갈 얘기인지 모르지만, 당당하고 떳떳하다면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
-앞으로 5년간 선출직,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정확하게는 '정권교체 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웃음) 한국에선 정치를 하는 순간 어느 한 편에 속해야 하고, 제 편에 불리하다면 진실도 감추고 입을 닫아야 한다. 그래서 정치를 싫어하고 앞으로도 정치를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정치는 절대 안 한다고 선언하진 않겠다. 제가 추구하는 사회정의 구현, 진실의 발견, 이런 것들이 정치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계획인가.
걱정 안 하셔도 된다. 경찰대 교수 연봉이 아주 짜다.(웃음) 글 쓰고 책도 내고 강연이나 방송 출연 등으로 열심히 벌면 지금의 생활수준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2013년 매달 전국 순회 강연을 하겠다고 했다. 무슨 얘기를 할 작정인가.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국민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5년을 차분히 준비하고 싶다.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어느 한 쪽 편에 무작정 서기보다 수권정당으로서 능력을 보여주고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쪽을 지지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자는 취지다. 현재 트위터 등을 통해 자원봉사 신청을 받고 있고 비용을 후원構渼募?분들도 많다. 1월부터 시작할 생각인데, 이분들과 상의해 곧 일정과 진행 계획을 확정해 공지할 예정이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인터뷰 동영상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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