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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100원은 따뜻한 밥통이에요… 희망 지펴준 온기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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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100원은 따뜻한 밥통이에요… 희망 지펴준 온기이기도 하죠"

입력
2012.12.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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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46)씨는 2000년 남편을 사고로 잃고 우울증에 시달렸다. 시댁과 피붙이는 멀어졌다. 심장수술을 받지 않으면 마흔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도 받았다. 그는 딸 지선(가명ㆍ6)이를 굶기고 방치하고 심지어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유치원도 못 보낸 지선이가 TV 보며 저 혼자 글을 깨치자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선이를 업고 공공근로를 했다. 한 달에 70만원 남짓 벌었지만 계약이 차면 한참 쉬어야 했다. 식당 예식장 등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집에 쌀이 떨어지면 모녀는 굶었다.

김희만(당시 광주 서창동장) 100원회 회장이 모녀를 눈여겨봤다. 지선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100원회 회원들이 매일 100원씩 모아준 돈의 일부를 떼 매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한차례 10만, 15만, 20만원씩 장학금을 줬다. 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났고, 지선인 18세 소녀가 됐다.

다 합쳐야 200만원이 채 안되니 결코 많다고 할 순 없는 돈이다. 당사자들은 어떨까, 속내가 궁금해 직접 광주로 내려가 모녀를 만나고, 메일(딸), 전화(엄마) 등 인터뷰를 일주일에 걸쳐 3차례 했다.

먼저 기말고사 다음날 지선이가 보낸 메일이다. '(100원회는) 비유하면 음, 밥통? 항상 배고프지 않게 밥을 짓게 해주니까. 100원회 장학금을 받을 때마다 회장님이 항상 기억하시고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시는 게 되게 마음에 와 닿았다. 나도 커서 100원회에 도움을 줄 수 있게 (100원회가) 그냥 이대로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 항상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최씨도 비슷한 기억을 떠올렸다. "몇 해전 쌀이 떨어졌는데 그 돈으로 쌀을 2포대 샀어요. 아마 100원회 장학금이 없었다면 굶었을 거예요." 그는 장학금이 매년 5월에 나와서 지선이 문제집이나 교복 여벌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곤 방 한쪽에 걸린 교복 블라우스를 가리켰다. "저것도 장학금으로 산 거예요. 그전엔 매일 밤마다 빨아서 입혔는데 두 벌이 되니까 편해요."

그러나 모녀의 삶을 바꾼 건 물질이 아니라 깊은 정성이다. "하도 고마워서 저도 100원씩 모아 보낸 적이 있어요. 몇 달 하다가 못했어요.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100원회 회원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에요."

처음 14평짜리 원룸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최씨는 말이 거의 없었다. 지선인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교에서 돌아왔다. 3시간만 자며 반에서 1, 2등을 다툰단다. 모녀는 "매년 도움을 받아 부담스럽고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최씨는 며칠 뒤 직접 전화를 걸어 긴 삶의 발자취를 털어놓았다. 행여 아이의 신변이 알려질까 봐 걱정도 했다. "그래도 너무 고마워서 이렇게 인터뷰라도 해서 도움이 되고 싶어요. 100원회가 없었다면 사는 게 더 힘들었을 테니까."

그러고선 김 회장을 비롯한 100원회 회원들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회장 부부가 모금을 늘리려고 고물이나 폐지 줍고 다니니까 근처 공장에서 '그걸로 얼마나 번다고, 여기 와서 일해라'한 적도 있대요." "회원 중엔 저희보다 형편이 좋지 않은 노인도, 장애인도 있다고 해요."

최씨 모녀처럼 100원회가 지원하는 이웃 중엔 유독 한부모가정 자녀가 많다. 외환위기 때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부모가 이혼한 이모(24)씨는 중1 때부터 100원회 장학금을 받고 올해 간호사가 됐다.

10년이 넘는 세월 회원과 수혜자가 늘었으니 모금 액수를 늘려도 될법한데, 김 회장은 딴 소리다. "우리나라 기부 문화는 액수가 적으면 시원찮다 안하고, 많으면 부담된다 안 하잖아요. 1억원 이상 기부하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을 존경해야 하지만 우리처럼 매일 100원씩 내는 평범한 이웃도 필요합니다."

"요즘 애들은 줘도 안 받는 100원이 주고받는 이들의 삶을 바꾼다니까요." 100원회 회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최씨에게 들은 100원회 회원들도 모르는 놀라운 얘기가 하나 더 있지만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함구한다. 다만 100원의 힘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광주=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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