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땐 후폭풍 우려 아르헨 병력 철수 조건영유권 재논의 한때 고려미국은 줄곧 전쟁 만류… 레이건 중재 나서자"알래스카 침공 당했다면 당신도 똑같이 행동" 일축
1982년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강경 대응으로 승리를 거둬 노(老)제국 영국의 자존심을 지킨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87) 전 총리가 실제로는 승리를 전혀 장담하지 못한 채 전쟁을 시작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는 30년 만에 공개된 영국 정부 문서에서 드러났는데 대처는 당시 포클랜드 제도를 아르헨티나에 일부 양보하는 식의 굴욕적인 해법까지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28일 공개한 82년 정부 문서에 따르면 당시 대처는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로 쳐들어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르헨티나 침공 직후 국방부 관리 중에서) 누구도 내게 포클랜드를 되찾을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해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남대서양의 영국령 포클랜드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대처나 영국 정부 관계자 누구도 영토 탈환을 장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대처가 93년 자서전 에서 밝혔던 것보다 훨씬 비관적인 상황인데 영국 정부가 이토록 무기력한 상태에서 전쟁을 강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영국이 전쟁에서 져 '종이호랑이' 대접을 받는 것을 두려워했던 대처는 전쟁 대신 외교 해법을 준비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가 침공한 지 2주가 지난 시점에서 대처는 아르헨티나가 병력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포클랜드 영유권을 재논의하는 식의 유화적 해결책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대처는 영국 함대를 파견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예측 및 정치적 후폭풍으로 인한 실각 위험에도 불구, 강경 대응을 결심했고 결과적으로 4월 말부터 공격을 강행해 6월 14일 전쟁 시작 75일만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받아냈다.
전쟁 전후 남미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했던 미국이 대처에게 전쟁 결정을 만류한 사실도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줄곧 이 문제를 대화로 풀자는 입장이었으며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전투가 한창이던 5월 31일 대처에게 전화해 아르헨티나에게 항복을 강요해 굴욕을 안겨주지 말고 적당히 끝내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대처는 "알래스카가 침공당했다면 당신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 응수하며 레이건의 제의를 일축했다.
82년 당시 영국 정부가 아르헨티나와의 교류를 중단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해 6월 스페인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대회 참가 중단을 고려한 사실도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또 대처가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에게 비밀 전문을 보내 프랑스산 엑조세 대함미사일의 아르헨티나 수출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일화도 공개됐다.
대처의 개인 비사를 담은 문서도 일부 공개됐다. 82년 1월 대처의 아들 마크 대처(당시 28세)가 사하라 사막을 종단하는 자동차 경주인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가 사막에서 실종됐는데 영국 외교부는 6일 동안 마크를 수색하기 위해 들어간 경비 1,789파운드를 대처에게 청구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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