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첫 인사로 임명한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글은 오래 전부터 읽어왔다. 그가 최근까지도 한 일간신문의 논설위원으로 기명 칼럼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기자도 자신의 작은 기사 한 꼭지, 어쭙잖은 칼럼 한 편 쓰기 위해 최소한 다른 기자나 전문가의 기사나 글 몇 편은 읽어야 한다. 쓰기 전에 훨씬 더 많이 읽어야 하는 직업이다. 그렇게 직업적인 의무감으로라도 윤 대변인의 글을 읽어왔던 사람으로서 당선인이 최초의 인사로 그를 임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일감은 "이게 아닌데…"였다. 앞으로 5년 동안 나라의 미래를 가늠할 시금석이 바로 당선인의 첫 인사라는 사실을 우리 누구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몇 번만 읽고 나면 그 후로는 제목만 봐도 내용 뻔하지 싶어 읽기 싫어 눈을 돌리다가도 다시 슬쩍 곁눈질을 하게 된달까, 그런 묘한 특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내용과 형식이 일반적인 신문 칼럼과는 다른, 너무나도 뚜렷한 선명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한 마디로 적이 분명했다. 그러기에 가장 선동적인 이분법을 시원시원하게 구사하고, 일관돼 보이는 듯한 논지를 가질 수 있었다. 그가 이번 대선을 '대한민국 세력과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의 대결'이라고 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어긋나는 쪽의 사람들을 '권력만 주면 신발 벗겨진 것도 모르고 냅다 뛰어가는 정치적 창녀'라고 비유한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 투표한 사람들 중 48%는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전복 세력이 됐다.
형식적으로도 그의 글은 신문에 실리는 칼럼이라고 보기에 특이했다. 그는 계속적인 동어 반복, 일부러 감정을 드러내는 문장부호들 즉 느낌표와 물음표의 과도한 사용을 통해 읽는 사람의 시선을 붙들고, 속을 헤집으려 했다. 예를 들면 '딱하다, 너무 딱하다 문재인', '더러운 안철수!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구절은 물론이고 대선 후 그가 쓴 글에 나오는 '이겼다! 이겼어! 이 석자를 깊이 깊이 기록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 쳐왔는가?' 같은 구절이다. 같은 어구의 의식적인 반복, 이어지는 느낌표와 물음표는 읽는 이에게 묘한 중독성 같은 걸 느끼게까지 만든다.
윤 대변인의 글은 이처럼 선명한 적의 설정, 저급하고도 강렬한 비유의 과감한 사용, 동어 반복에 의한 집중 효과, 서슴지 않는 감정 노출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특징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중을 대상으로 한 신문에 써야 할 글이 아니라 일종의 '삐라', 선전선동을 위한 전단의 전형적 속성이다. 그의 칼럼을 읽을 당시에는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지만 그가 신문사와 정치판을 오간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수석대변인 임명 후 논란이 되면서 알았고, 비로소 그러려니 했다. 그냥 언론인의 글이라고 믿기 힘든 그 정치적 편향성이 이해된 것이다,
그는 수석대변인 제안을 받고는 "지독한 고민 속에서 결심했다. 입에서 침이 마르게 주저했지만 거절하는 건 참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신문사에서 나올 때 어떤 경우든 정치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박근혜 정권을 잘 만들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걱정에서 결코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걱정을 할지 몰라도 국민들은, 특히 그에 의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으로 매도된 48%의 국민들은 수석대변인 직을 가진 그의 입이 걱정된다. 그가 '어떤 경우든' 정치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굳게 했던 결심이 '권력만 주면 신발 벗겨진 것도 모르고 냅다 뛰어가는' 심사에 의해 꺾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축제가 되어야 할 대선이 끝났는데도 주위를 둘러보면 신나는 일, 신명나는 사람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걱정이 더해간다. 우리사회에 희망의 실마리가 안보인다는 이야기다. 가장 큰 이유는 분열 때문이다. 52% 대 48%, 혹은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 또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갈등만 더 불거져 보인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이 거대한 분열부터 치유하고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야 할 텐데, 당선인의 '입' 역할을 할 사람이 분열을 부추기지나 않을까 또 걱정이다. 지난 정권들에서도 입으로 인한 화 많이 봐왔다. 글이든 말이든 자중하기 바란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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