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 동전 3개가 13년 만에 138만9,650개(1억3,896만5,000원)가 됐다. 동전 1개가 저마다 매일 97개씩 늘어 4,757일간 각각 46만3,216개가 된 셈이니 설화 속 화수분이 따로 없다. 화수분마냥 재물이 줄지 않고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는 진짜로 존재한다. 기자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바로 알려주면 싱거우니 100원에 얽힌 삽화(揷話) 몇 개를 전한다. 화수분의 위치를 알려줄 실마리이자 뚜껑을 따줄 열쇠다. 꼭 찾으셔서 내년엔 부자 되시기 바란다. 이미 600명 이상이 이 이상야릇한 화수분 덕에 부자가 됐다.
100원짜리가 말을 걸었다
아따, 영 짠 하드만(가엽다). IMF(외환위기) 1년 뒤일 것이여. 군대 휴가 나온 아들 녀석 고깃국 해 먹이려고 슈퍼에서 소고기를 훔친 엄마가 구속됐다고 신문에 나오드만. 쪼까(조금) 돕고는 싶은디 지방 공무원이라 돈은 없고 심란하기만 했재. 무심결에 서랍을 열었는데 100원짜리 3개가 굴러다니는 거여. 아따 참말로, 무신 계시도 아니고 고놈들이 말을 하더란게.
그 길로 지인들한테 연락하고 생활정보지에 쪽광고를 냈소 잉. '하루 100원으로 이웃을 돕자.' 지방지 기자가 그걸 기사로 쓰는 바람에 사방디(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고 회원이 10명에서 60명으로 불어블드만. 대강(대충)하면 큰 일 나겄다 싶어서 나(내)가 재활용 잘했다고 받은 상금 47만원을 종잣돈으로 통장을 하나 만들었재. 1999년 4월 5일 구청 회의실 빌려다가 100원회 창립 총회도 열고.
욕도 먹고 우세(비웃음)도 샀지라. "자기 출세, 영달 땜시 하는 쇼지 머여." "100원 모아서 누구 코에 부칠라고. 음마(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더랑게." 사기꾼이라고 경찰에 신고한 아줌마도 있당게라. 13년 넘게 이어 왔응게 인자(이제) 사람들이 "오메, 지금도 한다고라, 징하요 잉" 하고 놀랠 정도요. 지역 높으신 양반들이 우리 따라 매일 1,000원씩 모으는 1,000원회를 한다드만 여즉 소식이 없소 잉. 액수가 거시기(중요)한 게 아닝게.
동장이 폐지를 줍고 다니더라
시방까정 앞이 안 보인 지 33년 됐소. 1999년 8월인가 동네에서 노인들 안마하고 있는디 박스 줍는 동장이 있다고 하드만. 아니 동(洞)의 대장이 뭐할라고 별짝시랍게(유별나게) 고생을 사서 한다냐, 뭔 꿍꿍인가 찾아갔지라. 진짜 폐지랑 빈 병 주우러 다니드만.
매일 100원씩 걷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안 하요. 처음엔 콧방귀를 뀌었는데 나가 눈 썽썽(멀쩡)할 때 서울 영등포 육교에 있던 쪼맨한(어린) 아그들한테 750원 주니까 좋다고 춤추던 게 떠오르드만. '그려, 나도 사람을 도왔었재' 하고. 딴 동장들만치로 목에 깁스 안 한 것도 맴(마음)에 들고. 그래서 동참했소. 나가 못 벌어도 하루 100원이면 큰 돈은 아닌게, 쪼까썩(조금씩) 누굴 돕는다는 게 검나(많이) 영광이지라.
500원으로 올리면 좋겠는데
솔직히 기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애들 교육차원에서 시작했죠. 당시 7, 5, 3세였던 아이들에겐 100원도 아주 적은 돈은 아니었으니까. 아빠 구두닦이, 쓰레기 버리기 등 잔심부름을 시키고 100원씩 줬어요. 3,000원을 한꺼번에 주는 것보다 매일 100원씩 한 달간 모아야 돈의 소중함을 알 수 있잖아요. 그걸 100원회에 보냈죠.
남편이 월급을 못 받을 때도 많았어요. 당장 100원이든 500원이든 아쉬웠지만 아이들 이름으로 꼬박꼬박 냈죠. 다만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하루 100원이라는 게 민망하네요. 500원으로 올리자고 해도 회장님은 요지부동입니다. 하찮은 100원의 행복을 맹신하는 회장님의 철학이 좋아요.
100원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해라
지가 떼먹어 봐야 한 달이면 3,000원잉게 별 걱정도 안 했재. 게다가 기업이나 기관이야 몇 백, 몇 천씩 기부해도 우리야 없이 사는 처지니께. 글고 봉께 요것이 밥 먹드끼 되는 것이 아니오. 한몫에 옴팍(왕창) 내는 게 오히려 쉽소 잉. 매일 100원씩 모으려면 헤작헤작 못 혀, 정성이 있어야 한당게. 인자는 성가시께(귀찮아서) 자동이체 하지만 예전엔 진짜 저금통에 100원씩 넣었다가 보냈응게.
그라고 100원을 하찮게 보는디, 아닌 말로 100원 없으면 버스(1,100원)를 으차코롬(어떻게) 탄다요. 100원이 비면 1만원도, 1억원도 안 되는 것이여. 10년 넘게 낸 게 부부 합쳐 100만원도 안되지만(93만6,000원) 뿌듯해라. 더 못내 아쉽기는 해도 맴은 오지게 부자요.
매일 100원씩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100원회의 김희만(64) 회장과 창립회원인 시각장애인 장경일(52), 전업주부 이윤화(43)씨, 은퇴한 이명기(71) 주금단(65)씨 부부 얘기(위부터 차례대로)다. 각각 100원회의 탄생과 가입동기, 100원의 값어치와 의미가 담겨있다.
김 회장은 광주 서구청 계장(이후 동장 승진)이던 99년 100원회를 만들었다. 당초 김 회장의 광주 지인 15명이 의기투합했으나 현재는 서울 경기 부산 대구 제주 등 전국에 회원 650명을 두고 있다. 회장 얼굴을 모르는 이도,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 은퇴노인처럼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회원도 많다. 최연소 회원은 4세 남아, 최고령은 85세 할머니다. 100원회는 13년간 소년소녀가장 등 1,347명(중복 포함)에게 1억3,896만5,000원을 지원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장학금을 받고 최근 취직한 이웃도 있다.
이제 감이 오리라. 화수분은 우리의 선한 마음 속에 있다. 늘 그 자리에서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100원이라 부끄럽다고 망설이지 말라. 동전 3닢이 1억이 되고, 1,000명 남짓의 이웃을 살리는 기적이 우리 곁에 있다. 기자 역시 마음 속 화수분을 열어보려 한다. 오지게 부자가 되기 위해. 문의 011-666-0660(100원회 김희만 회장)
광주=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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