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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사건&사람] <4> 중곡동 성폭행 살해범에 아내 잃은 박귀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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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사건&사람] <4> 중곡동 성폭행 살해범에 아내 잃은 박귀섭씨

입력
2012.12.2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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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다니는 여섯 살 큰아들은 엄마가 죽은 걸 아는 눈치이긴 하지만 놀이방에 다니는 세 살짜리 막내 딸아이는 아직도 '엄마 어디 갔냐'고 물어요. 그럴 때마다 '산타할아버지가 데려갔다'고 말해줬는데, 며칠 전 놀이방에 산타 복장을 한 사람이 다녀갔나 봐요. 산타가 무슨 선물을 갖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이 '엄마를 돌려달라'는 말이었대요. 선생님한테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박귀섭(39)씨는 지난 여름 전자발찌를 찬 성폭행 전과 11범 서진환(42)에게 부인을 잃었다. 내년이면 엄마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장난꾸러기와 아직은 엄마 등에 업혀 지낼 꼬마숙녀는 더 이상 엄마의 포근한 품에 안길 수 없게 됐다. 두 아이는 4개월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연일 이 사건의 내용이 오르내리던 때, 박씨는 부인의 죽음에 눈물로 지새우기보다 언론에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려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부인을 잃은 후 4개월여가 흐른 28일 기자에게 그간의 심정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8월 20일. 박씨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출근 전 "일찍 들어오겠다"는 무뚝뚝한 말투로 집을 나서는 그에게 "벌써 나가요?"라며 졸린 눈을 비비면서 건넸던 한 마디가 부인의 생전 마지막 육성이었다.

박씨는 그날 점심때 친구로부터 "제수씨한테 일이 생긴 거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부인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경찰과 의사가 하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을 뿐 머리 속에서는 오로지 '복수'라는 단어만 맴돌 뿐이었다.

박씨는 사건 발생 3일 후에야 사건 현장인 집을 찾았다. "곳곳에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아내의 혈흔을 봤습니다. 흉기로 인한 과다출혈이 사인인 줄 알았더니 이미 수십 차례 주먹에 맞아, 흉기로 인한 상처가 아니었어도 생명이 위태로웠을 거라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다시 한번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가족들은 복수심에 불타는 박씨를 극구 말렸다. "형마저 잘못되면 두 아이는 어떻게 사느냐"는 동생의 말에 박씨는 복수를 법의 심판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서진환은 수 차례 성폭행 전력까지 있으니 내 손으로 처단하지 않아도 법이 가장 극한 형벌을 내려주리라 굳게 믿었다"고 말했다.

11월 22일. 법원은 서진환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잘못을 뉘우치는 의사를 부족하게나마 밝히기도 한 점, 사형은 문명국가와 이상적 사법국가가 극히 이례적인 경우에만 선고해야 하는 점, 동종 사건의 양형을 고려해야 하는 점"을 양형 이유로 들었다. 사형을 구형했던 검사는 법정에서 박씨의 손을 붙잡고 위로했지만 박씨는 무능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수원 여성 성폭행 살해범 우웬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판결을 참고한다는 이야기 같은데, 서진환 선고 내용이 왜 우웬춘 판결에 영향을 받아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박씨는 "6년 전 박근혜 당선인의 얼굴에 테러를 가한 사람조차 살인미수죄로 10년형을 받았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극악무도하게 내 아내를 살해한 서진환이 과연 무기징역에 그쳤겠느냐"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만 잊으라는 주변의 말도 있었지만 박씨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항소를 한 상태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네 식구가 매일 아침 저녁 함께 모여 행복한 대화를 나눴던 천국같던 내 집을 4개월째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악마와의 싸움을 계속하겠다."

서진환에 대한 항소심은 내년 1월 서울고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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