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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박스/ 미국 총기규제 역사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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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박스/ 미국 총기규제 역사가 주는 교훈

입력
2012.1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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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네티컷주 초등학교 총기 참사를 계기로 미국에서 총기규제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숨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다 눈물을 보였다. 총기규제에 반대하던 의원들도 속속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다. 그러나 헌법에 총기 사용을 권리로 못 박은 나라에서 총을 빼앗는 것이 가능할까.

1934년 전국무기법으로 시작된 미국의 총기규제는 68년 무기규제법, 86년 무기소지자보호법, 90년 학교지역총기금지법, 93년 권총폭력예방법 등으로 조금씩 이름을 바꿔가며 꾸준히 시도돼 왔다. 가장 최근인 94년의 입법 사례는 ‘총기 사고→대응 촉구→지루한 입법 논란과 총기단체의 로비→실효성없는 규제법 탄생’이라는 총기 논란의 전형적인 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93년 6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스티브 스포사토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총기를 금지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의 애달픈 사연이 계기가 돼 의회는 이듬해 폭력범죄 통제를 위한 법안의 일환으로 공격무기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반자동식 총기 19종과 11발 이상의 탄환이 들어가는 탄창 판매가 금지됐다. 권총식 손잡이나 소염기 등 군용 총기의 요소를 2개 이상 채택한 무기도 금지됐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기 무섭게 편법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총기 제조업자들은 기존의 디자인을 교묘하게 수정하는 방식으로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갔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총기협회(NRA)의 강력한 로비에 넘어간 의원들은 규제 대상에서 과거 구입한 총기를 제외시켰다. 당시 미국은 이미 반자동소총과 권총의 천국이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총기규제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었다. 민주당 9선 의원인 댄 글리크먼(캔자스)은 총기규제에 찬성했다가 94년 총선에서 낙선했다. 총기규제법으로 일자리가 대폭 늘었지만 소용없었다. 그 해 민주당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공화당에게 하원 다수당 지위를 뺏겼다.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패한 데는 그가 총기규제 지지자였다는 점도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공격무지금지법은 2004년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이 연장을 거부하면서 자동 소멸됐다.

과거 열렬한 총기 지지자였다가 은퇴 후 반대론자로 돌아선 밥 미첼 전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는 당시 NRA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총기에 찬성한 사실을 고백했다. “나는 그 무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후배 의원들에게는 부디 자신의 양심에 투표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황수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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