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방금 어린 애를 죽인 건가?”
“응, 어린이였던 것 같은데.”
“확실히 어린이였어?”
창문도 없는 비좁은 컨테이너 안에서 한 무리의 남성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로의 얼굴이 아닌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나누는 대화는 비디오 게임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직업은 미국 공군 특수부대 소속 무인기 조종사. 방금 이들이 죽인 것은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뉴멕시코주 캐넌 공군기지에서 1만㎞ 떨어진 아프가니스탄 빈민촌의 어린이였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이다
브랜든 브라이언트는 우수한 성적으로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원격조종항공기(RPA) 기동부대에 배치됐을 때 그는 자신이 앞으로 6년간 사각 컨테이너에 갇혀 컴퓨터 모니터 14대와 씨름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브라이언트의 임무는 미국이 아프간 테러리스트를 척결하기 위해 파견한 무인기를 원격 조종하는 것이었다. 명색이 파일럿이지만 하늘을 휘젓고 다니기는커녕 의자에서 일어난 적도, 굳게 닫혀진 컨테이너 밖으로 나간 적도 없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컨테이너 안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미사일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죽어갔다. 브라이언트는 한동안 자신이 죽인 사람은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결코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브라이언트와 동료들이 조종하는 무인기 프레데터는 그날 아프간 북동부 바글란 지역의 주택 위를 맴돌고 있었다. 모니터 안에 잡힌 것은 시골 빈민촌의 허름한 집으로, 진흙으로 바른 벽 옆에는 작은 염소 우리가 딸려 있었다. 순간 발포 지시가 떨어졌고 브라이언트와 옆에 앉은 동료는 집 지붕을 겨냥해 버튼을 눌렀다. 발사까지는 16초가 걸렸다.
“마치 슬로모션 같았어요.” 브라이언트는 당시를 회상했다. 무인기가 전송하는 화면은 2~5초의 간격을 두고 조종사들의 모니터에 반영된다. 버튼을 누른 후 7초까지는 화면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발사 3초 전 갑자기 한 어린이가 집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것이 보였다. 브라이언트는 급히 발사를 취소하려 했으나 프레데터가 이미 미사일을 발사한 뒤였다. 모니터 안이 화염에 휩싸였고 곧이어 폐허가 된 가옥이 비춰졌다. 어린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브라이언트는 가슴 한 쪽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컨테이너가 잠시 술렁였다. “어린이였어?” 저마다 모니터 채팅창에 질문을 던졌다. 누구도 확신을 갖고 답하지 못했다. 그때 공격을 지시한 사령부의 누군가가 대답했다. “어린이가 아니라 개였습니다.” 그러나 브라이언트를 포함한 모두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다리 두 개인 개도 있나?’
“인간성이 상실된 느낌… 그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브라이언트가 사람을 죽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6년 간 비행시간 6,000시간을 돌파한 베테랑 파일럿이자 사명감에 불타는 군인이었다. 고교 시절 전쟁에 별 관심 없던 그가 열정적인 군인으로 변신한 건 신참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어 그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무인기로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들을 엄호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작전을 마치고 기지로 돌아가는 미군들을 관찰하던 브라이언트는 아스팔트 위에서 수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일명 ‘눈(eye)’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알 카에다 같은 무장세력이 땅에 폭탄을 매설한 뒤 타이어를 녹여 아스팔트를 메운 흔적이었다. 브라이언트는 즉시 상부에 보고했지만 좀 더 기다리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첫 번째 수송차량이 눈 위를 무사히 통과했다. 긴장이 풀리려는 순간 두 번째 차량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차에 타고 있던 군인 5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날 이후 브라이언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폭탄 감별, 무인기 조종법, 미사일 발사법 등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사람을 향해 미사일을 쏜 날 브라이언트는 심각한 감정의 동요를 겪어야 했다. 적군을 향해 발사한 미사일로 2명이 즉사했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살아 남은 1명은 잘려진 다리에서 붉은 피를 뿜어내며 브라이언트가 응시하고 있는 모니터를 향해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한 주 내내 고통스러웠습니다. 인간성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복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적에 대한 경계심도 희미해져 갔다. 브라이언트는 무인기 모니터를 통해 아프간 상공을 배회하면서 눈 덮인 산봉우리와 아름다운 계곡, 그리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관찰했다. 축구를 하며 뛰노는 소년과 밭을 경작하는 농부, 아내와 아이들을 끌어안는 아빠가 화면 안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미국 정부의 제거대상에 오른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녀들 앞에선 자상한 아빠였다. 그는 어느새 그들 얼굴 하나하나를 기억할 수 있게 됐다.
버튼을 누르는 일은 점점 더 그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쉬는 날은 온통 술을 마시거나 온라인 전투게임만 했다. 잠도 오지 않았고 TV도 볼 수 없었다. 매일 피를 보는 그에겐 어떤 영화나 드라마도 지루하기만 했다. 결국 군에서 나와 고향인 몬태나주로 돌아온 그에게 의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불안한 표정으로 어머니 집 소파에 기대 앉은 브라이언트는 자신이 결정적으로 컨테이너를 박차고 나온 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날 조종석으로 들어가면서 제가 저도 모르게 동료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더군요. ‘야, 오늘은 어떤 망할 자식을 죽일까?’”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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