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땅에 머리를 부딪혔습니다. 제 주인이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다가 저를 떨어뜨렸어요. 어라? 주인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냥 무시하고 걸어 갑니다. 잉잉. 그 사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저를 밟고 지나갑니다. 어릴 때만 해도 몸값이 높았는데 휴…제 신세 한탄 좀 들어 주실래요?
저는 올해로 42세, 꽃 중년이 된 100원짜리 동전입니다. 몸무게는 요요 현상 없이 늘 5.42g을 유지하고 있어요. 얼굴은 충무공 이순신(동전 앞면) 장군을 빼 닮았답니다.
왕년에 제가 얼마나 잘 나갔냐 면요, 제가 태어난 1970년(첫 발행)엔 자장면이 딱 제 가치(100원)였답니다. 또 저 하나면 담배 10갑을 해결 할 수 있는데다, 소주는 한 병을 사고도 35원을 주인에게 남겨줬어요. 얼마나 예쁨을 받았을지 상상이 가시죠?
그런데 이제는 거스름돈 용도로 전락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는 기껏해야 쇼핑카트의 잠금 장치를 풀 때 정도 같아요. 아니면 '리터당 100원 할인' 등의 광고 문구에 잠시 이름을 빌려주는 신세이거나.
집(한국은행)에서도 눈치가 보입니다. 저는 구리 75%, 니켈 25%로 이뤄졌는데, 요즘 얘네들이 비싸져서 저를 만들려면 100원이 살짝 넘거든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지요.
그래도 매년 제 후손들이 엄청나게 태어납니다. 현금 지불을 하는 곳이면 어디든 제가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갖고 다니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쓸 데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저를 '장롱 속 주화'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에요. 올해(1~11월)만 해도 한국은행에서 3억2,600만개(326억원)가 태어났어요. 반면 한국은행이 시중은행 등한테서 거둬들인 100원은 77억원에 불과하죠. 어딘가에서 쿨쿨 잠자고 있는 저의 동지들이 꽤 많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은행은 저를 찾기 위해 2008년부터 '범국민 동전 교환 운동'을 벌이고 있어요. 매년 5월 한달 간 금융회사 및 유통업체가 합심해 저와 지폐를 맞바꾸는 캠페인이에요. 이 운동으로 올해는 작년보다 15.7% 늘어난 1억6,100만개(161억원)의 100원이 모아졌어요. 사람들 입장에서는 집안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모아 지폐로 바꾸니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될 테고, 저희 집은 저를 만드는 재료 값을 아끼니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어요.
당장 저의 걱정은 이렇게 길거리에서 굴러다니다가 심하게 훼손되면 어쩌나 하는 거예요. 돈 역할을 못하면 폐기되니까요. 저를 포함해 10원, 50원, 500원 동전들이 매년 10억원 넘게 폐기돼 사라집니다. 작년엔 2,120만개(17억3,900만원)의 동전이 못쓰게 돼 버려졌어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제가 죽을 때 후손한테 몸(구리 등 성분)을 기증(동전 주조)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지만 저처럼 온전히 또 다른 가족을 탄생시킬 순 없잖아요.
여러분, 그래도 저는 좀 더 살고 싶어요. 정년 퇴직하기에도, 죽기에도 너무 이른 나이잖아요. 그리고 이왕 태어난 거 의미 있게 살고 싶어요. 그러니 제가 주변에서 보이거든 줍고, 모으고, 써주세요. 요즘엔 자투리 동전을 기부하는 곳도 많던데 남아도는 동전이 많으신 분들은 '가벼운' 기부 어떠세요?
여행객 기부 외화 동전 유니세프 통해 빈국 지원
저소득·심장병 어린이 등 든든한 버팀목 역할까지
'티끌 모아 자선'
한 푼 두 푼의 힘을 믿는 시민과 기업들이 똘똘 뭉쳐 다양한 형태의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전을 모아 18년간 70억원을 모은 아시아나항공이 대표적이다. 아시아나는 1994년부터 여행객에게 쓰고 남은 동전이나 지폐를 기부하도록 권유하는 '사랑의 기내 동전 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주로 쓰고 남은 외국 동전을 내놓는 경우가 많지만 한번에 1만달러를 기부하는 등 고액 기부 사례도 꽤 된다.
물론 동전 기부에 국적 제한도 없다. 현존하는 모든 국가의 통화는 다 받는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은 따로 환전하지 않고 그대로 한 달에 한번씩 유엔 산하단체인 유니세프로 전달된다. 유니세프는 이 기부금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린이들의 교육, 보건 사업을 위해 쓰고 있다. 어린이에게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하거나 설사병에 걸린 어린이에게 구강수분보충염을 공급하는 게 주요 보건 사업이다.
김해시의 '잠자는 100원 깨우기' 캠페인도 눈에 뛴다. 김해시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남본부는 11월 초 김해시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동전 모으기 운동을 펼쳤다. 단 5일간의 반짝 기부였는데도 127만원이 모였다. 김해시 관계자는 "기부액은 저소득 아동들을 위해 쓰였다"며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해 추가로 읍면동 곳곳에 저금통 22개를 설치, 초록우산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鳧떡풩?동전 기부가 활발하다. KB국민은행은 5월부터 롯데슈퍼와 '사랑의 동전 나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국민은행이 운영하는 기부사이트(www.givecoin.kr)에 가입한 뒤 기부처(유니세프 또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지정하면 롯데슈퍼에서 현금 계산 후 1,000원 미만의 거스름돈이 기부처로 전달된다. 외환은행은 매년 겨울 카드 포인트를 기부하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 더블 나눔이벤트'를 벌인다. 고객이 기부하는 액수만큼 외환은행이 추가로 기부해 한국심장재단에 전달하는 식이다. 작년엔 고객 포인트 992만4,452원, 외환은행 1,000만원을 합쳐 2,000여만원을 모았다. 10년간 이렇게 기부한 금액으로 총 84명의 어린이가 심장수술을 받았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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