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거리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먼 나라잖아요. 그래서 갔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할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법조인들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 러시아에서 한국인 최초로 모스크바 변호사 자격증을 딴 이가 있다. 법무법인 세종 소속 변호사 정노중(43)씨다.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그의 삶은 1990년대 초반까진 다른 법조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95년 중국 국립무한대 연수가 러시아에 눈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중국의 급변하는 사회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국내에 머물 것이 아니라 법률시장의 불모지인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고민 끝에 공산국가의 맏형이자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거대한 제국 러시아로 행선지를 정했다. 그는 2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전은 두렵지 않았다”며 “지적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혼자 러시아로 떠났던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인 한 명 없는 러시아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개혁개방의 물결 속에서 체제의 혼란이 극에 달했던 97년의 러시아는 추운 날씨만큼 높은 물가와 부족한 식량으로 이방인의 삶을 비루하게 했다. 불운까지 겹쳤다. 그 해 한국이 IMF 구제금융 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곤궁했던 그는 결국 귀국 보따리를 싸야 했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진 않았다. 1년여 동안 유학비를 모아 99년 러시아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이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국가와 법 연구소’에서 토지법 박사연구원으로 학업을 이어가면서 변호사가 되기 위한 실무 연수도 병행했다. 2006년 마침내 모스크바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한국인 최초이자 외국인 출신 변호사 1호 기록이었다.
정씨는 러시아 변호사를 딴 뒤 국내 대형 로펌으로 소속을 옮겨 모스크바 현지 사무소장으로 좀 더 큰 규모의 송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9년 모스크바 특허심판소에서 진행된 국내 대기업을 대리한 2건의 상표권 분쟁 특허심판사건에서 승소했고, 이후에도 국제무역분쟁 등 2건의 소송에서 국내 수산업체 등을 대리해 연이어 이겼다. 러시아 현지에서 다양한 법률실무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정씨는 “최근 러시아 경제개발통상부가 공공ㆍ민간 합작법안(PPP)을 입법예고하고 유관 법령의 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점을 국내 기업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법은 교통인프라와 공영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의 투자요건을 완화하는 게 골자. 그 동안 자회사를 통해 소극적으로 러시아 SOC사업에 진출했던 한국 기업들에겐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러시아와 노하우는 있지만 새로운 시장 개발이 취약한 우리에게 PPP법은 상생의 기회가 될 겁니다. 거대한 러시아 SOC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한국 기업들의 적극적인 도전정신이 필요합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