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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2월 28일] 문재인의 패배가 아름다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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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2월 28일] 문재인의 패배가 아름다우려면

입력
2012.12.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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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유증이 심상치 않다.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 패자의 아집과, 관용을 보이지 않는 승자의 옹졸함이 부딪치고 있다. 패배에 책임지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인터넷상의 '노인 지하철 무임 승차 폐지 서명 운동'말이다.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한 젊은 세대가 박근혜 당선인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5060세대를 겨냥한 치졸한 분풀이다. 노장년 세대는 "지금처럼 살 만하게 만든 게 누구냐"며 젊은이들을 책망한다.

이번만큼 세대 지역 계층을 갈라서게 만든 선거가 없다는 걱정이 많다. 선거 이후 잇단 노동자의 죽음은 선거가 파놓은 갈등의 골이 범상치 않음과 그 골을 메우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문 전 후보를 지지한 주변 지인들 중에는 "박근혜의 5년을 사느니 이민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탄식하는 이가 드물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다음 정부 들어 곧바로 문 전 후보를 지지한 48%에 의해 '제2의 촛불'이 켜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선거에서 진 패자가 죽음에 이를 만큼 절망하고 나라를 떠나려는 마음마저 갖게 하는 것은 이번 선거가 '전쟁'처럼 치러졌기 때문이다. 애초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인물과 비전을 선택하려는 '경쟁'은 없었다. 그저 상대가 이기면 앞으로 5년은 없다는, 죽기살기 식 전쟁이 있었을 뿐이다. 75.8%의 투표율을 기록한 것도 전쟁에 임하는 이러한 절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 당선인의 최우선 과제는 당연히 이렇듯 갈래갈래 찢어진 공동체를, 국민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대통합이 오직 그 만의 몫일까.

국민 통합과 갈등 치유를 위해서는 문 전 후보 주변에서 현란하고 비장한 언사로 국민을 선동해 선거를 '전쟁'으로 치닫게 한 지식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이들이 해야 하는 것은 '아침에 한 술 뜨다가 비로소 운다'거나, '가끔씩 궁금한데 나치 치하의 독일 지식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말처럼 다음 정부를 '나치'에 비유하는 일이 아니다. '절망은 독재자에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웃에게서 온다'며 절반의 국민을 저주하는 일도 아니다. 돌연 문을 걸어 잠그고 '묵언안거(默言安居)'에 들어간다는 것도 선거전 최전선에서 진영을 이끌던 사람의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선거에서 지자마자 남몰래 외국으로 떠난 사람들은 비겁해 보인다.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스스로 먼저 나서서 상대의 승리를 인정하고 패배한 국민들을 설득해 깊은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듣고 싶던 얘기는 학식을 갖춰 존경 받는 자리에 있는 이들 지식인들이 아니라연예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탤런트 유아인씨는 한 인터넷 매체에 "차기 정부의 실정(失政)을 염려하되 실정을 염원하는 코미디는 없어야 한다. (차기 정부가) 제대로 일해주기를 바라는 게 우선 아닌가. 그것이 국가를 위함이다. 과거를 반성하며 앞날로 가야 한다. 그것이 진보다. (당선인이) 약속은 꼭 지킨다니 그 약속의 책임을 믿음이란 무기로 그에게 강요할 생각이다. 필요하다면 응원도 할 생각이다"라고 썼다.

문 전 후보는 선거 직후 바로 패배를 인정하고 박 당선인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해 '아름다운 패배'의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권교체의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지만 패배를 성찰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문 전 후보는 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친노 그룹은 비노 그룹과 선거 패배 책임 공방과 당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패배를 반성하지 않는 모습은 문 전 후보를 지지했던 국민들의 절망감을 더 깊게 만들 뿐이다. 지금의 패배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때 미래의 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 문 전 후보의 패배가 강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김동국 정치부 차장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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