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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28일] 유니폼 바꿔 입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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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28일] 유니폼 바꿔 입을까요?

입력
2012.12.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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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경기는 꼭 지고 만다는, 스포츠팬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징크스처럼, 이번 대선도 그랬다. 사실 나는 선거에 있어서 늘 지는 편에 속했다. 48%든, 0.5%든 가리지 않았다. 이제 지는 일에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이번 대선은 그게 쉽지가 않다. 이번 선거는 마지막까지, 심지어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고 난 후까지도 꼭 이길 거라 믿고 있었기에 상처가 크다.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없이 삐뚤어질 것만 같다.

물론 대통령 선거는 스포츠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승부가 갈리고, 승부를 위한 전략이 수립되며, 그것을 실천하는 선수가 있고, 유권자라는 그라운드가 있다는 점에서 선거는 스포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선거의 기본적인 방법과 제도가 스포츠의 그것을 제대로 옮기기만 해도, 우리는 행복한 투표를 할 수 있다. 흑색선전이 없는 페어플레이, 공정한 심판 역할을 하는 선관위, 체급이 같고 규칙과 전략을 숙지한 선수(후보). 그것을 딱히 게임이라 부르지 않을만한 이유도 없다. 결정적으로, 지는 편과 이기는 편이 있으니, 어떤 스포츠보다 흥미진진한 축제가 바로 선거일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당선인은 인수위를 조직한다. 48%의 국민은 새로운 대통령이 더 나은 정치를 보여주길 바랄 것이다. 보통 경기가 끝나고 나면, 승자는 환호하고 패자는 고개를 숙인다. 중요한 경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월드컵 결승전이 끝났다고 치자. 어떤 패자는 그라운드에 쓰러져 한참을 울기도 한다. 한국시리즈가 끝났다고 치자. 어떤 패자는 더그아웃 구석에서 짐을 싸며 울음을 삼키기도 한다. 경기로 치자면 대선은 선거 중 가장 중요한 게임이다. 거기에서 진 48%의 국민은 지금 경기장에서 퇴장하지 못할 정도로 다리와 심장에 힘이 빠졌다. 거대한 멘붕의 맥없는 파도다.

스포츠에서는 보통 이렇다. 승리한 축구선수 중에 하나가 패자에게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운다. 자신의 유니폼에 손짓한다. 바꿔 입자는 말이다. 이제까지 혈투를 벌인 상대팀의 유니폼 하의를 입고 서로 악수한다. 끌어안기도 한다. 그들은 적이기 이전에, 축구라는 운동을 하는 동료이므로, 서로의 심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위로할 줄 알고, 축하할 줄 안다. 승리한 야구팀은 어떠한가. 야구는 홈런이나, 삼진 같은 장면에서 과격한 세리모니를 자제하는 편이다. 상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 장면에서 승자는 크게 자축을 벌일 것이다. 시끌벅적할 그때, 우승팀의 감독은 상대팀 감독에게 가서 악수를 청한다.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아주 중요한 선거에서 승리했다.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승리했으니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모두 우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포츠로 치자면 유니폼 바꿔 입기다. 악수 청하기다. 더욱이 선거 시작부터 끝까지 100% 대한민국, 국민 대통합을 외치던 후보였으니, 당연 그리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적어도, 승자가 취할 수 있는 점잖은 체면치레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손 내미는 선수 하나 없다. 모자를 벗고 악수를 청하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되려 48% 국민을 조롱하고, 그들의 지지를 이끈 후보에게 막말을 퍼부은 자를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한다. 우는 국민에게 침을 뱉은 격이다. 선거가 끝나고 지금까지 4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대선의 승자가 자신을 거두지 않을 것이라는 허탈함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정권교체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낸 젊은 작가들을 선관위는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스포츠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갈린다. 이제까지 글을 뒤엎어서 말하겠다. 정치와 선거는 스포츠가 아니다. 거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48%의 국민은 패자이고 51.6%의 국민은 승자인가? 과연 그렇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라 피 튀기는 그라운드일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정권이 추구하는 국가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하물며 스포츠에서도 승자는 패자를 위로한다. 그들에게 예의를 지킨다.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의 절반을, 위로도 받지 못할 패배자로 만들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선 노동자의 죽음을 막아주길 바란다. 패배의 결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모두에게 처참하고 가혹하다. 약간의 위로만이라도, 부탁이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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