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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금고 털자" 먼저 제안하고 망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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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금고 털자" 먼저 제안하고 망본 경찰

입력
2012.12.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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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발생한 전남 여수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 배후에 강력계 형사 출신의 현직 경찰관이 있었던 것으로 26일 드러났다. 경찰은 범인 박모(44ㆍ구속)씨의 친구인 우체국 관할 파출소 소속 김모(44) 경사가 직접 범행을 제의하고 박씨와 역할까지 분담한 것으로 보고 김 경사에 대해 이날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더욱이 김 경사는 여수경찰서 강력팀에 근무하던 2005년 6월에도 박씨와 함께 은행 현금지급기를 털었던 사실도 밝혀졌다.

"김 경사와 사전에 공모한 것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25일 오후 8시30분쯤 여수경찰서 1층 진술녹화실. 체포 직후 "혼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던 박씨는 경찰이 CCTV 화면을 들이대자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이 화면에는 김 경사가 사건 전날인 8일 오후 10시3분쯤 등산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범행 현장에 갔다가 9일 오전 4시47분쯤 귀가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박씨는 "범행 15일 전 김 경사가 찾아와 우체국 금고를 털자고 제안했다"며 "올해 대학에 합격한 딸의 등록금이 필요해 범행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경찰관 주도로 이뤄진 전대미문의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은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연상시키듯 치밀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경사는 범행 모의 5일 뒤인 지난달 29일 오후 3시8분쯤 금융기관 방범진단을 한다며 우체국 금고 쪽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뒤 이를 박씨에게 보여줬다. 금고 위치를 확인한 박씨는 범행 3일 전 우체국 부근 건너편 화단 풀밭에 산소용접기 등 범행도구를 미리 숨겨 놓았다. 이어 우체국이 문을 닫는 일요일인 9일 새벽 우체국 옆 식당에 침입한 박씨는 우체국 금고와 맞닿은 벽을 뚫고 금고에 있던 5,200여 만원을 훔쳤다. 박씨가 4시간여에 걸쳐 '작업'을 하는 동안 김 경사는 우체국 밖에서 망을 봤다. 훔친 돈은 김 경사와 박씨가 절반씩 나눠 가졌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날 긴급체포된 김 경사는 진술을 거부하다 경찰의 집중 추궁이 이어지자 26일 오후 "박씨와 공모했다"고 자백했다. 특히 김 경사는 2005년 6월22일 오전 2시30분쯤 여수시 미평동 모 은행 현금지급기에서 박씨와 함께 현금 879만원을 훔친 사실도 털어놓았다. 당시 범행 수법도 우체국 금고털이와 비슷했다. 식당 방범 창과 맞닿은 은행 365일코너의 현금지급기 뒤쪽 방화문과 2중 철문을 잘라낸 뒤 돈을 훔쳤다. 경찰은 김 경사가 당시 사건 수사를 맡았던 여수경찰서 강력팀에서 근무한 사실을 확인, 수사방해가 있었는지 여부도 조사 중이다. 김 경사는 1992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 초임지인 고흥에서 여수로 발령을 받은 뒤 줄곧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로 형사과에서 강력사건을 다뤘으며 지난해 6월 사행성 오락실 업주와 통화한 사실이 감찰에 적발돼 파출소로 징계 전출됐다. 김 경사는 1997년부터 장례업을 하던 동갑내기 박씨와 사회에서 만나 매우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경사와 박씨의 자백으로 금고털이 사건의 얼개는 상당 부분 드러났지만 범행 동기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딸의 등록금 때문이라는 박씨의 진술과 달리 주변사람들은 10여년 전부터 장례식장과 견인업체 등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다는 말해 신빙성이 떨어진다. 맞벌이 부부인 김 경사도 경제적 궁핍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경사가 강력팀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완전범죄로 거액을 챙기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2005년 여수 모 병원 금고털이 사건과 2006년 여수 축협 현금지급기 도난 사건과의 연관성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날 김재병 여수경찰서장을 문책, 대기발령하고 후임에 정재윤 인천경찰청 생활안전과장을 임명했다.

여수=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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