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에세이스트
‘응답하라 1997’인가 하는 드라마가 하도 인기를 끌어서, 우리 사무실에도 야근할 때 양해를 구하고 90년대 음악을 들으며 일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별로 싱그러운 추억 같은 게 떠오르진 않았다. 십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으로 돌아간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어떻게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이른 나이 때문에 과 동료들과 술도 못 마시니 혼자 토요일 대낮 중국집에 들어가 짬뽕에 이과두주 시켜 놓고 박찬호 야구를 하릴없이 바라보던 시절, 아주 나쁘게 시작했던 술, 더 나쁘게 시작했던 연애, 그 모든 걸 되풀이하라면 절대 사절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나를 뭐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니나 그간의 실수와 상처입히고 상처입는 경험과 밥벌이의 무서움을 되풀이할 생각을 하면 악몽 같다.
이 복고 코드는 내게 꽤 오래된 불편함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가수들이 큰아버지뻘 가수들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TV프로그램을 볼 때도 그랬다. 물론 젊은이들의 빼어난 노래 실력으로 오랫동안 귀에 익은 노래를 새롭게 들려 주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 혼신의 열창을 보며 속이 상했던 건, 우리는 먹고 살고 사랑하며 예술하자고 우리 걸 만들어서 보아라 세상아, 하고 내미는 게 아니라 저 어른들이 만들어냈던 좋은 것들에 존경, 아니 아부에 가까운 제스처를 보여야, 그러니까 ‘귀여움’을 받아야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구나, 하는 씁쓸함이었다. 물론 장기하 같은 경우는 예외지만 누가 노래를 만든다 해서 스펙 쌓기에 바쁜 또래들이 들어 줄 시간도 없고, 브라운관마다 십대 중반의 소녀들이 ‘섹시하다’라는 아저씨 게스트들의 칭찬을 입이 마르게 들으면서 ‘쩍벌춤’을 끝없이 해대는데 누가 무슨 용기로 노래를 할까. ‘엄친아’ 나 ‘엄친딸’이 아닌 이상 대졸 간판 단 후 학비 부채를 짊어지고 취업하려고 죽을 힘을 다하는데, 결국 취업에 성공하면 안정된 내 삶이 생기는가? 그럴 리가. 죽을 힘을 다해 회사 일을 하게 될 뿐이다. 한국 성인의 독서량은 일 년에 열 권 남짓이라니 한 달에 책 한권도 못 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요즘 남자 친구 녀석들에게 소개팅 시켜줄까? 하고 물으면 예전처럼 예뻐? 하고 묻지 않는다. 그들은 지친 얼굴로 걔 집 어디야? 멀어? 라고 묻는다. 문화 향유고 창작이고 예술이고 데이트고 뭐고 일단 ‘시간’이 없는 것이다.
‘엄친딸’, ‘엄친아’들은 문화계급과 자본의 힘이 있으니 문화적 소양이 높은 이들은 곧 부의 대물림을 입은 이들을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걱정 없고, 그냥 우리 엄마 아빠 아들딸인 우리는 어떡하나? 지금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우리가 늙고 지쳤을 때, 우리는 도대체 어떤 문화를 가진 중년이 될까. 혹시 공통된 젊음의 기억을 소환하는 노래 하나 없는, 가장 황폐한 세대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응답하라 1997’은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을 곱씹으며 살기에, 주인공인 80년생들은 아직 너무 젊다. 누가 촛불을 떠올리면서 런던에선 시위할 때 가게 부수는데 우리는 너무 착했어, 라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가게나 촛불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는 다 너무 착했다. 착한 아이들이 착하게 자라나서 이렇게 된 것이다. 착하면 복이 온다더니, 착하면 호구였단 걸 깨닫고, 분노해 봤자 기운만 빠지니 어떻게든 신속하게 체제에 영입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을 잘 아는 얌전한 어른들로, 그 체제 안에서도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 착한 청년들로 자라난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마흔이, 어떤 오십이. 곧 다가올 그 날들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일단은 좀 덜 착해질 필요가 있다. 대선이 끝났지만 “요즘 젊은 애들이~” 하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는데, 어느 만화에 등장하는 구절을 읽어 드리고 싶다. “동정할 거면 돈으로 줘요. ” 아, 미안하지만, 요즘 88만원 세대들 어떡해~ 해 주시는 ‘착한’ 어른들도 포함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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