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혁신학교 시즌2'를 선언한 건 대선이 막바지 국면으로 접어들던 지난 3일이다. 진보교육감의 좌장 격인 그는 200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기도에 혁신학교를 도입한 이래 3년여 간 도내 154개 초중고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해 집중 지원하면서 가능성을 실험해온 셈이었다. 그날 그는 "혁신학교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며 "2015년까지 도내 2,201개 모든 초중고교를 혁신학교로 전환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김 교육감의 선언은 경기도의 뒤를 따른 광주 강원 전북 전남 등 전국적으로 산재한 진보교육감 재임 지역 혁신학교 정책의 방향타가 될 만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선 전교조 출신 이수호 후보 역시 "학생들을 경쟁에서 해방시키겠다"며 '서울형 혁신학교'의 확대를 공약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 교육감의 혁신학교 실험이 전면 확대를 자신 있게 선언할 만큼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 만만찮은 의구심이 일었다. 특히 김 교육감의 선언 직전에 나온 '2012 전국 초중고생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는 그의 자신감에 심각한 물음표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당장 경기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수준부터 김 교육감 취임 이래 최근 3년 연속 전국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학교는 더 불안했다. 혁신고교의 학업성취도 점수는 2~3년 전 학생들의 점수보다 낮은 '기대점수 미달'로 나타났다. 진급하면 수업을 못 따라갈 정도인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일반고교보다 훨씬 높은 건 충격이었다. 이런 현상은 경기도 이외의 혁신학교들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됐다.
김 교육감은 "학업성취도 평가방식 자체가 부적절하며, 입시제도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경기지역의 한 신문은 즉각 "꼴찌 교육감이 꼴찌를 하고도 큰소리 치는 건 궤변"이라고 되 쳤다. 또 다른 신문은 "대입제도가 문제라지만, 현 대입제도가 획기적으로 개편되지 않는 한 혁신학교는 불안한 '김상곤의 교육실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혁신학교는 처음부터 성적 지상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대안교육으로 출발했다. 현행 공교육의 획일적인 학습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배양하는데 초점을 뒀다. 학급 당 학생수 25명 이하, 학년 당 5학급 정도의 '작은 학교'를 편성하고, 학교 별로 시설과 자율적인 커리큘럼을 개발하도록 연간 1억~2억 원의 막대한 지원금이 투하됐다. 중간ㆍ기말고사를 폐지하고 철학이나 창의지성 교과서를 따로 개발한 것도 학생들에게 시험용 지식 이상의 교육을 하기 위한 모색인 셈이었다.
혁신학교에 대한 호응도 나타났다. 적지 않은 교사들이 열의를 되찾았고 상당수 학생들이 '시험 없는 학교'에 즐거워했다. 일부 혁신 초중학교는 인근 아파트의 전셋값이 오를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 혁신학교의 전면 확대를 추진하는 건 아무래도 지나친 독선으로 보인다. 취지가 좋고 노력이 가상해도 초중등 교육과정은 일단 사회나 대학이 요구하는 인재상에 부합하는 학생을 육성해야 한다. 그걸 떠나서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일반학교보다 많다는 건 변명의 여지 없는 실패다.
혁신학교의 인기 역시 혁신교육 자체에 대한 신뢰라기 보다는 초중등 수준의 저밀도 교실과 다양한 체험학습 등에 대한 학부모들의 제한적 선호일 가능성이 크다. 파헤쳐 보면 교수법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한 학교도 허다하다. 따라서 지금은 혁신학교를 무리하게 확대하기 앞서 운영을 보다 내실화 하면서 성과를 좀 더 지켜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선 다행히 문용린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혁신학교 정책이 보다 신중한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게 보수나 진보를 떠나 교육현장의 조변석개(朝變夕改)식 실험에 넌더리가 난 대다수 학부모들의 바램이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진 교육자로서 김 교육감이 부디 평정심을 찾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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