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해 전 우리는 대학로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산으로 가릴 수 없을 만큼 세차게 비가 오던 여름 밤. 그가 존경하는 시인과 그를 좋아하는 한 친구는 그의 식사 초대가 마냥 고마울 따름이었지만, 그는 시인의 젖은 신발을, 부질없이 들어야 했던 우산의 거추장스러움을, 그리고 대화가 끊기는 사이사이의 자연스러운 침묵까지 제 탓인 양 죄스러워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자작 개그라며 짧은 우스개 한 토막을 들려줬고, 우리는 이야기 자체보다 그의 진지한 어투와 간절한 눈빛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14년차 출판기획자인 김도언은 그날도 그렇게, 스스로는 웃지 않으면서 친구들을 행복하게 했다.
그의 새 산문집 (이른 아침)는 착한 소년처럼 상대를 배려하며 스스로는 늘 애달아 하는 그의 일상과 문학의 단상들이, 때로는 치열한 사유로 또 때로는 시적 서정으로, 한 점 농기(弄氣)없이 채워져 있다. 읽고 쓰고 만드는 책 이야기, 일로 친구로 만난 사람들 이야기, 감당해야 했던 세상 이야기…. 그 사이사이 프로급 실력으로 찍은 사진과 짤막한 글들이 실렸다. "누군가 앉았던 의자, 누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의자는 저렇게 있다. 저 혼자 몰래 앉은 채로. 의자도 앉는다는 것을, 사람은 모른다."
깊게 가라앉은 그의 어조는 더러 자기모멸에까지 다가서는 자성으로 서럽게 이어지지만, 세상을 더 깊게 껴안으려는 갈망으로, 또 희망으로 수줍게 퍼덕인다. 그가, 그의 글이, 잘 웃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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