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는 1886년 3월 벨기에 안트베르펜을 떠나 파리에 왔다. 거처는 동생 테오가 있는 몽마르트의 작은 방이었다. 그는 파리에 도착해 외쳤다. "프랑스의 공기는 머리를 정화시켜 줘. 내게 도움이 많이 돼."
그는 파리가 주는 첨단 예술의 각종 표현양식을 배우고 빨아들였다. 에밀 베르나르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등 아방가르드 화가들을 만나 교류했다. 드가의 누드, 클로드 모네의 풍경도 봤다. 내면의 눈으로 본 것을 그리는 인상주의는 당시만 해도 저항적인 표현양식이었다.
반 고흐는 인상주의를 발판으로 몽마르트의 시장, 노천카페, 시골풍경을 그렸다. 반 고흐는 폴 세잔과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했다. 세잔의 색채구사를 부러워하며 그의 그림 옆에 자신의 작품이 걸리는 걸 피할 때도 있었다. 또 클로드 모네의 예술을 존경했다. 반짝이는 노란색의 지중해 너머 황혼의 태양과 마을을 그린 작품에 탄복했다. 테오가 모네의 대리인이라 테오의 화랑에서 반 고흐와 모네는 자주 마주쳤다. 폴 고갱은 무섭게 생긴 외모와 격하고 독선적인 성격이라서 동료들이 싫어했지만 반 고흐는 그가 예술적 표현이 뛰어난 훌륭한 화가라고 생각했다. 반 고흐는 고갱이 섹스에 중독되고 야심차며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고 여기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점묘화가인 폴 시냐크와는 가끔 야외로 나가 그림 그리기 시합을 하기도 했다.
테오의 보호 아래 있었지만 갈수록 그와의 말다툼도 심해졌다. 반 고흐는 테오가 그림을 잘 팔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했고, 테오는 형이 집 안을 어지럽히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이때 반 고흐는 점차 일본 예술의 생동감과 화려한 색채에 반했다. 그는 일본의 시골마을과 비슷한 프로방스의 아를로 떠났다. 1888년 2월이었다.
반 고흐의 파리시기는 그의 예술적 토대가 구축되는 시기. 어두운 그림이 밝은 그림으로, 한정된 주제에서 다양한 주제로,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열린다. 불후의 걸작을 예고하는 명작들이 바로 파리시기에 탄생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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