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의 특별한 이벤트가 벌어진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수 백 개 휴대전화의 알람이 동시에 울리자 마주보고 있던 남녀 수 백 명이 서로를 향해 전진했지만 곧 압도적인 숫자의 남성들에 밀려 여성들이 뒤로 물러났다. "밀지 마요, 밀어봤자 남자밖에 없어요." 남성참가자들은 허탈한 기색이 역력했다.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던 수천 관중들 사이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호기심으로 시작한 청춘 남녀의 대규모 미팅 이벤트인 '솔로대첩'은 싱겁게 끝이 났다. 행사장인 여의도공원 주변에 두 시간여 전부터 몰리기 시작한 인파는 3,500여명(경찰추산)에 달했다. 하지만 정작 행사 참가자는 남성 700명, 여성 300명뿐이었고 대부분 이벤트 관객들이었다. 솔로를 면해보려는 청춘들보다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론의 관심이 쏠리다 보니 호기심이 동한 관객이 더 많았던 것이다.
주최측은 남성은 흰 옷, 여성은 빨간 옷을 입고 오라고 권했지만 대다수 참가자가 각양각색의 옷차림으로 왔다. 여자친구를 구하기보다 재미 삼아 참가했다는 사람도 많았다.
처음 본 낯선 남자의 데이트 요청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탓이었을까. 곳곳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찾아 대시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성사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번도 여자친구가 없었던 '모태솔로' 송모(24)씨는 "큰 용기를 내고, 세 차례나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호감을 나타냈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경기 안산에서 온 박모(18)양은 "7명의 남성이 '같이 커피 마시자' 등의 말을 하며 접근했다"며 "오늘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 오는 남성과 만나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남성들이 초콜릿이나 장미꽃으로 '물량공세'를 펴기도 했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는 여성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싱거운 즉석만남 속에서도 '대어'를 낚은 청춘남녀가 있었다. 대학생 이모(22)씨는 장미꽃으로 빨간 목도리를 두른 청순한 미모의 여대생 조모(22)씨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 이씨가 공원을 배회한 지 한시간만이다. 조씨는 "깔끔한 외모에 착하게 생긴 인상의 이씨가 마음에 들었다"며 "크리스마스를 재미있게 보낼 것 같다"고 말했다.
다소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미팅이 이루어지자 일각의 탈선과 범죄 우려를 상기한 듯 한 남성은 "내가 남자들한테 성추행 당하게 생겼구만"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당초 솔로대첩은 서울을 포함, 전국 14곳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5곳은 장소 섭외가 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취소됐다. 제주에서는 남자만 3명 나오는 바람에 자동 무산됐다. 전국적으로 3만5,0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던 솔로대첩에는 고작 2,860명이 참가했다.
성인용품 관련업체 관계자들이 주최측 허가 없이 참가자들에게 콘돔을 배포해 물의를 빚기도 했으나 우려했던 안전사고나 범법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에서만도 경찰 230명이 현장에 배치되고 자경단 100여명도 질서유지와 사고예방을 도왔던 덕분이다. 이 때문인지 행사 강행 시 고발하겠다고 경고했던 여의도공원도 방침을 철회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무리 이벤트라지만 솔로대첩처럼 일시적이고 인위적인 만남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이서희기자 sherlo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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