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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25일] 깊은 처마가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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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25일] 깊은 처마가 있는 집

입력
2012.12.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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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집은 사계절을 나야한다.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빛의 문제, 비와 눈, 단열의 문제, 공기의 순환 같은, 현대과학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사실 말이 쉽지 이 모든 것을 인간이 통제하고 관리하기란 불가능하다. 단열이 잘 되면 통기가 안되고, 통기가 잘 되면 단열이 안 된다. 습기를 막으면 집이 건조해지고, 습기가 집안으로 한 번 들어오면 쉬이 빼기가 어렵다. 요즘 말하는 에너지 절약형 집은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 말고는 대부분 단열이 잘 된 집을 가리키는데, 이게 화근이다. 덕분에 우리는 한겨울에도 속옷차림으로 생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통기가 안 되어 감기를 달고 살고, 아토피에 시달린다. 항상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자연의 법칙이거니 생각하면 편하지만, 그 모든 일이 사실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자연을 거스른다는 얘기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더 따뜻한 집, 더 편한 집을 원하다 보면 항상 탈이 난다. 더, 더, 더, 가 항상 문제다. 그렇다면 자연에 따르는 집은 어딘가 모자라는 집이라는 얘기가 된다. 여름에는 좀 덥고, 겨울에는 좀 추운 집이 있을 뿐이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집은 있을 수 없다. 기계장치로 항상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어디 인간이 방안에서만 사는 생물이 아니지 않은가? 모든 생물은 항상 밖과 만난다. 집안이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집밖의 기후와 적절히 조응하지 못하면 그것도 탈이다. 인간의 몸은 외부환경에 탁월하게 적응하도록 되어있다. 이 탁월한 적응력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인간의 몸은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집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집은 어딘가 항상 모자라게 마련이다. 이 모자란 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여 사계절에 적응하게끔 만들어진 집이 조선집이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적응은 항상 어딘가 모자란 적응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집의 처마는 더위와 추위에 적절하게 대응한다. 조선집에서 지붕은 주위환경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하는 부분이다. 일단, 비와 눈을 막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붕이 외벽에서 바깥으로 뻗어나온 부분을 특별히 처마라고 부른다. 다시 안쪽에서 살펴보면 처마는 단순히 지붕이 삐져나온 부분이 아니라, 대청이나 문, 창과 바깥 사이에 둘린 투명한 커튼 같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물렁물렁한 공간이다. 이 공간이 비가 올 때 창문에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며, 집의 부재를 보호하고, 사람의 통행을 보호할뿐더러, 여름과 겨울의 빛을 막고 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조선집에서 처마의 길이는 가장 합리적으로 정해진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이 하지와 동지 때의 태양의 남중고도다.

우리나라의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볼 때 태양의 남중고도는 하지때가 가장 높아 76.5도이고, 동지때가 가장 낮아 29.5도다. 조선집의 처마는 이 두 각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대략 춘분과 하지 사이의 태양 빛이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외벽의 경계까지를 그 길이로 한다. 그렇게 따지면 처마의 길이는 대략 120~150㎝가 된다. 그 결과 겨울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낮아지며 방안 깊숙이까지 빛이 들어오는 반면, 여름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아져 방안으로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시원함을 준다. 더군다나 여름에는 집자체의 그늘이 뒤란에 드리워져 있어 낮은 온도를 유지하고, 앞마당에는 태양빛에 달궈진 공기가 서로 대류하므로 바람 한 점 없는 여름철에도 집안에서는 공기가 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대류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조절하는 것도 처마의 작용이다. 조선집의 처마가 양끝에서 살짝 들어 올려져있는 것도 이 대류의 작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흔히 처마가 전체적으로 직선으로 처리되면 양끝이 마치 처진 것처럼 보이는 것을 교정하기 위해 처마를 들어 올렸다고 알고있는데, 이는 집을 인식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건축의 미학을 조선집에 무분별하게 적용한 잘 못 된 사례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조선집은 절대 집을 미학적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함성호 시인ㆍ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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