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이슈도 특별한 변화도 없었다. 여전히 막은 올라가고 좋은 작품도 나왔지만 누구나 첫 손에 꼽을 만큼 우뚝한 봉우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올 한 해 한국 연극계 풍경이다.
제자리걸음 혹은 침체 분위기가 지배적인 가운데 올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 등 제작 중심을 표방한 공공 극장의 활기다. 2010년 법인화 이후 고정 단원 없이 프로젝트 형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온 국립극단은 '삼국유사 프로젝트'로 9월 '꿈'(김명화 작, 최용훈 연출)부터 11월 '로맨티스트 죽이기'(차근호 작, 양정웅 연출)까지 5편을 비롯해 해외 연출가 초청 2편('밤으로의 긴 여로''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내놓았다. 명동예술극장이 올해 제작한 작품은 민간 극단과 공동 제작한 2편을 포함해 9편. 셰익스피어 2편을 비롯해 피터 쉐퍼의 '아마데우스', 입센의 '헤다 가블러', 손튼 와일드의 '아워 타운'등 연극사의 고전을 주로 선보여 극장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창작발전소를 자임한 남산예술센터도 '878미터의 봄'(한현주 작, 류주연 연출) '푸르른 날에'(정경진 작, 고선웅 연출) 등 사회성 짙은 수작을 포함해 8편의 창작극으로 존재감을 높였다.
반면 자체 극장이 없거나 소극장을 겨우 꾸려가는 대학로의 민간 극단들은 형편이 어려워 신작보다 재공연에 치중했다. 주목 받는 작가와 연출가, 배우들이 대거 공공 제작극장의 중대형 무대로 이동하면서, 소극장 연극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온 민간 극단의 위기론까지 나왔다. 그래도 꽃은 피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는 극단 백수광부의 '과부들'(아리엘 도르프만 작, 이성열 연출), 극단 청우의 '그게 아닌데'(이미경 작, 김광보 연출), 두산아트센터가 제작한 '목란언니'(김은성 작, 전인철 연출)가 꼽혔다. 특히 '과부들'은 웬만한 공공극장의 제작 규모를 뛰어넘는 대형 공연을 민간 극단이 제작해 올렸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는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웨덴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이 100주기를 맞아 130일간 4개 극장에서 펼쳐진 스트린드베리이 페스티벌은 한국에 스트린드베리이를 정식으로,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출발점이 됐다. 국내 처음으로 스웨덴어 원전에서 직역한 대본으로 10편의 공연을 올린 이 축제에는 국내 6개 극단과 스웨덴 스트린드베리이 실험극장이 참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연이 급조된 인상이 강해 작품성에는 의문을 남겼다. 다만 스웨덴어에서 바로 옮긴 스트린드베리이 희곡 전집(번역 이정애)이 출간을 앞두고 있어 아쉬움을 달래준다.
한편 평생 연극에 헌신하며 국립극단 단장을 지낸 원로배우 장민호는 수많은 연극인들의 존경과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다.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