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베트남 전쟁 때 적으로 만나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사람끼리 손을 맞잡았습니다. 이거야말로 한국ㆍ베트남 간 20년 수교의 완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아니겠어요?"
이수희(76ㆍ예비역 소장)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회장은 23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도 콩 무이(70ㆍ예비역 소장) 베트남 무공수훈자회 회장과 만나 화해의 악수를 한 데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두 사람은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한ㆍ베트남 전쟁 영웅 화해 협력을 위한 만남의 행사'에서 악수와 포옹을 하고 서로 화환을 걸어줬다.
1966년 제9사단 28연대 9중대장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이 회장은 도깨비 1호 작전과 마두 1호 작전, 오작교 작전 등에 참가해 세운 전공을 인정 받아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무이 회장도 66년부터 10년 간 케산 전투 등에 참전해 북베트남 1급 훈장을 받았다.
이번 행사는 과거 서로 적이었지만 이제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된 양국의우호와 협력이 앞으로 더 확대되도록 노력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한국군 베트남 파병의 영향과 남겨진 과제'를 주제로 한 학술 회의도 함께 열렸다. 이 회장은 "국제 관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전쟁의 명분과 달리 참전 영웅 모두 군인의 본분에 따라 국가에 충성을 다했다는 사실은 불변"이라며 "군인의 명예는 언제까지나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두 나라 무공수훈자회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 화해의 만남'을 매년 한국과 베트남에서 번갈아 개최하는 형태로 정례화하는 한편 협력 사업 추진 방안도 모색키로 했다. 무이 회장은 "젊은 학자들이 참여하는 학술 토의와 참전 용사들을 통합하는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내년엔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후손들까지 베트남으로 초청해 행사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양국의 무공수훈자회가 형체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친해지면 양국의 우의가 깊어지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이 회장과 팜 꽝 민 하노이국립대 부총장 등 베트남 방문단 7명은 22일 경기 포천시 중부전선 제2땅굴과 평화전망대 등 안보 현장을 찾아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체감하기도 했다.
베트남에는 현재 3,000여곳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고, 양국의 연간 교역량도 20조원에 이른다. 무이 회장은 "한국을 과거 맞붙어 싸웠던 나라로 기억하는 사람은 베트남에 이제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나 양국의 우애가 더 돈독해지려면 한국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베트남전 고엽제 후유증은 아직도 심각합니다. 민간인 피해자들도 셀 수 없지만 미국은 거들떠 보지도 않아요. 한국이 도와주기를 기대합니다. 현재 전사자 유해 발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한국이 지원해 준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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