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국내 첫 해외 청부살인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유동 국제 청부살해 사건'의 배후 주범이 사건 발생 16년 만에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검거됐다. 1996년 2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심모(당시 45세)씨가 집에 침입한 재미교포 김모(당시 27세)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으로, 남편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폭력조직 조직원을 통해 이혼 소송을 제기한 부인을 청부살해 한 사실이 드러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었다.
당시 김씨는 심씨가 지른 비명을 듣고 달려온 이웃 유모(당시 25세)씨에게 격투 끝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청부 살해를 사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심씨의 남편 홍모(당시 51세)씨였다. 경기 지역에서 운수업체 2곳을 운영하는 재력가인 홍씨는 1986년 심씨와 재혼했다.
홍씨는 심씨가 도박벽과 여성편력을 이유로 이혼 소송을 내자 미국으로 건너가 'T'라고 불리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 T는 LA를 본거지로 하는 폭력조직 '왕차우'의 조직원으로 알려졌다. 홍씨의 의뢰를 받은 T는 3만 달러를 주기로 하고 실업 상태에 있던 주범 김씨를 고용, 자신의 하수인인 또 다른 홍모(당시 38세)씨와 함께 한국으로 보냈다.
청부 살해는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시동생 홍모(당시 41세)씨와 남편 소유의 운수회사 노조위원장 김모(당시 46세)씨도 김씨 일당에게 활동자금 300만원을 건네고 심씨 집 주변을 사전 답사하도록 돕는 등 범행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행히 주범 김씨가 범행현장에서 붙잡히면서 시동생 홍씨, 노조위원장 김씨가 차례로 경찰에 검거돼 법의 심판대에 섰다. 미국에 도피해 있던 남편 홍씨와 범행 다음날 미국으로 도망갔던 하수인 홍씨도 2년에 걸쳐 차례로 검거됐다.
하지만 청부 살해를 계획하고 주도했던 T의 흔적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남편 홍씨가 T의 진짜 이름과 나이를 몰랐기 때문이다. 주범 김씨와 하수인 홍씨도 옥바라지와 미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T가 돕는 조건으로 입을 다물었다.
T에 관한 단서라곤 국내에서는 '해골'로 불리기도 했다는 관련자 진술뿐이었다. 경찰은 전국 조직폭력배를 상대로 '해골'의 존재를 탐문 했다.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일당을 수시로 찾아 설득했고, LA에서 경찰로 일하는 한국 교민을 수소문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이 2007년 T가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추적의 실마리가 풀렸다. 2009년에는 실명과 유사한 T의 또 다른 별명도 밝혀졌다. 15년인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난해 초 끝났지만 경찰은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할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는데, T가 LA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연장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마지막 퍼즐이 나왔다. T가 군복무 한 부대를 찾아내자 일당들도 사진 속의 T가 김모(56ㆍ당시 40세)씨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김씨는 사행성 불법 게임장이 성행했던 2006년 국내에서 불법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다 경찰 단속에 적발돼 입건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주 LA에서 수유리 청부살해 사건의 마지막 공범 김씨가 인터폴에 체포됐다고 23일 밝혔다. 경찰은 "신병을 넘겨받는 대로 살인교사 등의 혐의로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며 "억울하게 숨을 거둔 심씨가 이제라도 편히 눈감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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