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을 본 독자들은 아마도 이번 대통령 선거 득표율 얘기를 하려는구나 하고 지레 짐작하실 것이다. 그러나 '51.6% 대 48.0%'은 이번 대선의 후보 득표율 얘기가 아니다. 2010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에서, 부모의 생활비를 자녀가 제공하는 비율과 부모 스스로 해결하는 비율의 수치이다.
이번 대선 결과를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나이가 상당히 든 국민, 특히 50대에서의 적극적인 지지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낳았다는 점이다. 동시에 48%의 지지율의 근저에는 사회적 변화를 열망했으나 좌절되어 소위 '멘붕'에 빠진 젊은 세대가 많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지역감정 혹은 '성장 대 분배'가 같은 이슈 대신, 세대 간의 정치적 견해차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득표율의 분포는 부모 생활비 제공이라는 세대 간 관계의 변동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차기 정부가 수행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지만, 나는 협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핵심 중의 핵심 사항이라 믿는다. 굳이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잘살아보세'라는 말을 넘어 '함께 잘살아보세'라고 주장하고 싶다.
생태학 연구의 결과들을 보면 숲이 성숙해 갈수록 외부에서 유입되거나 밖으로 유출되는 물질이나 에너지의 양은 줄고, 대신 시스템 안에서의 순환율이 높아진다. 사회에 비유하자면 경제가 성숙해지면서 무역의 기여가 계속 증가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시점 이후에는 내수가 더욱 중요하게 되며, 경제성장률 증가 속도는 낮아지지만, 사회 내의 복지 시스템으로 부족함을 채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여기서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되려면 경쟁뿐 아니라 협력이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협력이란 2명의 개인이 각자 일을 할 때 얻어지는 이익의 합보다, 두 명이 같이 할 때 얻어지는 이익의 총량이 더 큰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생태학 연구의 결과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생물들의 먹이는 매우 다양한데, 서로 다른 종류의 미생물을 섞어 키워보면 흥미로운 점이 나타난다. 만일 두 종류의 미생물의 먹이가 전혀 다르고 이를 먹는 방법도 다르면 서로 경쟁도 협력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완전히 동일한 먹이를 찾는 경우에는 경쟁은 계속 증가하지만 협력의 정도는 크게 떨어진다. 어느 정도 먹이의 종류가 중첩되면서도 상이한 점이 동시에 존재해야 협력은 최고조에 달한다. 미생물 따위로 어떻게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려 하느냐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이론을 통해 이미 기업체의 협력과 경쟁에 대한 기작들이 밝혀졌다. 쉬운 예를 들자면, 기술 분야가 일정 정도만 겹치는 삼성과 구글은 협력도 가능할 수 있지만, 대상 시장과 핵심 역량이 동일한 삼성과 애플은 절대 협력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이 중첩의 정도가 바뀐다면, 언제든지 협력에서 경쟁, 혹은 그 반대 관계로 급변할 수 있다.
차기 정부는 경쟁의 강조를 넘어 최적의 협력이 가능한 사회 체계를 만들어야만 한다.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중고등학교의 사교육, 학비가 비싸다고 비난 받으면서도 아직도 국제 경쟁력이 부족한 대학들, 많은 연구개발(R&D) 비용을 쏟아 부어도 아직도 세계 수준에 달하지 못한 과학기술계의 문제 해결에는 이런 협력의 구조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청년실업에 내몰린 젊은 세대와 길어진 평균 수명 위에 가계 부채에 짓눌린 노년층이 동일한 성격의 직업과 자원만이 주어진다면 결국은 파괴적인 경쟁과 갈등만이 남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노력 없이 과실만을 따먹는 버릇없는 녀석들이 아니라, 노년층의 복지에 필요한 세금을 제공할 당사자이며, 노년층은 아직도 1970년대 향수에 젖어있는 꼰대가 아니라, 곧 닥쳐올 청년층의 미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로 이 글 제목에서 언급한 수치는 올해에는 50.7 대 48.9로 더욱 균형에 가까워 졌다. 서로 상이한 관점과 방식이 더욱 팽팽히 맞설 것이라는 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협력의 구조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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