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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2월 24일] MB가 박수 받으며 떠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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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2월 24일] MB가 박수 받으며 떠나는 방법

입력
2012.12.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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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뒤 10년간 중국을 이끌어 온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가장 큰 치적은 무엇일까.

중국이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는 이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동시에 후임자에게 이양한 것도 높게 평가한다.

실제로 지난달 15일 시진핑(習近平) 신임 총서기를 중심으로 하는 제5세대 지도부가 출범했을 때 전 세계 언론은 시 총서기의 등장이 아니라 후 주석의 용퇴에 더 많은 박수를 보냈다. 이는 후 주석이 전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그랬던 것처럼 총서기 자리는 물려주더라도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계속 유지할 것이란 세간의 예상을 뒤집는 것이었다. 장 전 주석은 2002년 총서기 자리를 후 주석에게 이양하고도 중앙군사위 주석은 2004년에나 넘겨줬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남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의 최고 지도자는 군권에 병적인 집착을 보였다. 물론 후 주석이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내 놓은 것이 정파간 권력 투쟁에서 패한 결과라는 분석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전임자를 핑계 삼아 2년 가량 늦게 물려주겠다고 우긴들 누가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군권을 흔쾌히 내놓은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정치적 지위가 안정적인 상태에서 군권을 넘겨준 중국의 첫 지도자' '퇴임 후에도 권력을 행사한 원로 정치의 구악을 깨부순 작은 혁명' 등의 찬사가 이어진 이유다. 가장 큰 수혜자는 물론 후임자인 시 총서기다.

후 주석이 사실상 권력을 내 놓는 마지막 날 재임 중 가장 큰 치적을 이뤘다는 점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대통령의 재임 중 공과에 대해선 평가가 갈린다. 그러나 후 주석을 보면 이 대통령에게도 역사에 기록될 치적을 남길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이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선 가장 모범적인 정권 인수인계를 해준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대통령직을 넘겨 주고 넘겨 받을 때마다 우여곡절이 컸던 나라도 드물다. 독재에서 군부로, 군부에서 민간으로, 그리고 두 번이나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인수인계가 매끄러웠던 적은 거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을 이런 마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없잖다.

이 대통령이 최근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청와대를 중심으로 인수인계 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지시한 점은 이런 점에서 주목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이다. 후임자의 성공이 전임자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인수인계를 성심성의껏 해 주느냐에 달렸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 전임자를 후임자는 존중한다.

후 주석이 시 총서기를 위해 군권까지 내 놓자 시 총서기는 "후 주석의 용퇴는 숭고한 인품과 고상한 기풍, 맑은 절개 등을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후 주석도 시 총서기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를 위해 분투할 것을 믿는다고 격려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전임자의 경험과 자산을 후임자가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장면을 중국 지도부가 보여준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정권 인수인계 과정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새로 집권하면 전임자를 부정하는 데에 힘을 쏟곤 했다. 5년 밖에 집권하지 못하면서 매번 맨땅에서 새로 출발하는 한국의 지도부가 이런 중국 지도부와 만날 때 어느 정도의 협상력을 발휘할지는 볼 보듯 뻔하다. 이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자의 아름다운 인수인계를 볼 수는 있을까. 이 대통령이 박수 받으면서 떠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외면하지 않길 기대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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