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여자 핸드볼은 2007년 상영됐던 '우리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하 우생순)'이란 영화로 널리 알려졌다. 2004 아테네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의 실제 사연을 담은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면서 핸드볼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생순'을 이끌었던 세대들은 대부분 코트를 떠나고 여자 핸드볼은 새로운 세대 교체의 기로에 섰다. 선배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성장한 새로운 '우생순 키즈'가 바로 권한나(23)와 최수민(22ㆍ이상 서울시청)이다. 여자 핸드볼의 미래인 그들을 지난 19일 서울 잠실종합경기장 내에 위치한 서울시청 숙소에서 만났다.
무서운 새내기 듀오, 아시아를 휩쓸다
올해 한국체대를 졸업하고 나란히 서울시청 유니폼을 입은 둘은 지난 16일 인도네시아에서 막을 내린 제14회 아시아여자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가 3명 밖에 없어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젊은 선수들은 힘과 패기를 앞세워 4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권한나와 최수민은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각각 10골, 12골을 몰아 넣으며 22골을 합작했다. 권한나는 "처음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추운 한국에 비해 날씨가 무더워 체력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행히 초반 승리를 거두면서 잘 풀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수민은 큰 키(175㎝)에서 나오는 높은 점프력과 체공력이 돋보인다. 권한나는 여자 선수답지 않은 몸싸움과 기술이 장점이다. 이들의 지도자인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은 "한나는 강심장이다. 국내보다 국제 대회에 나가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국제용 선수다. 수민이는 경험이 조금 부족하지만 신체조건이 뛰어나 공격력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내가 거친 핸드볼을 하는 이유는
핸드볼은 여자 선수들이 하는 구기 종목 중에서도 가장 거친 스포츠로 손꼽힌다. 워낙 몸싸움이 심하다 보니 한 경기가 끝나고 나면 타박상 등 잔 부상을 입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 힘든 스포츠가 핸드볼이지만 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핸드볼을 하면서 청소년대표-성인국가대표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최수민은 "어렸을 때부터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공을 던지면서 시작했던 것이 나도 모르게 핸드볼과 뗄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내 인생의 일부가 돼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진행되는 시즌을 위해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합숙 생활을 한다. 오전에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SK전용핸드볼 경기장에서 전술 훈련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야간에는 개인 훈련까지 한다. 주말이 돼야 외출과 휴가가 주어질 정도로 매우 고된 일상의 연속이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에 친구 또는 애인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인내를 하면서 훈련을 한다.
권한나는 "핸드볼은 연습과정이 너무나 힘들다. 어떻게든 코트에 들어서서 상대를 이겨야 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지만 그만큼 골을 넣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때 큰 희열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아쉬움 남는 2012년, 뱀의 기운 받아 비상을 꿈꾸다
2013년은 재물과 복을 상징하는 뱀의 해인 계사년(癸巳年)이다. 올해 아쉬움이 많았던 이들은 새해를 맞아 더 큰 비상을 꿈꾸고 있다.
권한나는 런던올림픽에 출전해 '히든 카드'로 맹활약을 펼쳤지만 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눈물을 흘렸다. 2012 SK 핸드볼 코리아 리그에 첫 출전했던 최수민도 대회 베스트 7에 선정되면서 개인적으로 인정받았지만 팀이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다. 최수민은 "올림픽 기간이 끝나고 후반기에 10일 밖에 손발을 맞출 시간이 없었다. 올해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내년에는 무조건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내년 세르비아에서 열리는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에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권한나는 "최근 한국 여자 핸드볼이 6위권 밑으로 떨어졌었는데 내년에는 최소한 4강 이상 오르고 싶다. 명예 회복을 해야 한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둘의 공통된 소망은 관중석을 가득 채운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권한나는 "런던올림픽만 해도 각종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갖지만 그때뿐이다. 이전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솔직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최수민은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직접 찾아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전용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부딪히면서 거친 숨을 쉬는 것을 직접 보면 정말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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