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미국과 유럽의 거시정책으로 발생한 폐해에는 눈을 감고 중국 등 신흥국 외환정책 개선만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는 비판이 IMF 내부에서 제기됐다. 그동안 IMF가 선진국 이익 관철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는 지적은 종종 있었지만 IMF 내부 기구가 이런 주장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IMF의 정책평가기구인 독립평가실(IEO)는 20일 보고서에서 "IMF가 영향력 있는 지분 보유국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외환보유고 급증을 과도하게 경고해 왔다"고 지적했다. IMF의 전망이나 정책 권고가 거대 지분국의 압력에 따라 왜곡됐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IEO는 거대 지분국이 어디인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현재 IMF 지분 구조로 볼 때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IMF는 1국 1표제를 행사하는 유엔 등 국제기구와 달리 주식회사처럼 보유 지분에 따라 표결권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17.69%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 6.56%, 독일 6.12%, 프랑스ㆍ영국이 각각 4.51%를 가지고 있다. 경제 규모에서 일본과 독일을 추월한 중국의 지분은 4.0%, 남미 최대 경제대국 브라질의 지분은 벨기에(1.93%)보다 못한 1.79%에 불과하다.
IMF는 2009년부터 각국에 외환보유고를 지나치게 높이지 말 것을 권고해 왔다. 외환보유에 불균형이 생기면 금융 안정성이 손상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것은 중국이 환율조작(위안화 가치의 고의적 하락)을 통한 수출 증대의 결과 외환보유고를 높이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인식과 일맥상통한다. 올해 9월 기준으로 중국이 3조2,850억달러를 보유해 외환보유고 1위에 올라 있고 러시아(5위), 대만(6위), 브라질(7위), 한국(8위), 인도(9위) 등 신흥국이 외환보유 순위 상위권에 올라있다.
IEO 보고서는 외환 보유를 늘리지 말라는 IMF의 지적이 신흥국 외환보유고 급증 현상의 근본 원인을 외면한 처방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양적완화나 유럽ㆍ일본 등의 통화팽창으로 인해 지본시장이 교란된 것이지 신흥국 외환보유고 때문에 불안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IEO는 "외환보유고 같은 문제보다는 (양적완화로 인한) 자본시장의 유동성 증가나 자본흐름의 변동성 같은 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IEO의 지적에 IMF 집행부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국제금융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광범위한 차원 중에서 일부분에만 집중한 보고서"라 평가절하하며 "IMF는 신흥국의 입장을 반영해 자본 유출입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최근 낸 적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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