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대 마야인이 예언했다는 지구 종말의 날인 21일에 즈음해 세계는 흥분하고 심한 몸살을 앓았다.
가장 먼저 21일을 맞은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특별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자 주민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우리는 살아 남았어"라는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안도했다.
프랑스 남부 부가라시, 세르비아의 르탄산, 터키의 시린제, 이탈리아의 시스테르니노 등은 지구가 종말을 맞아도 안전할 성지로 지목돼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부가라시는 인파가 몰리자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으며 시린제는 400개 호텔의 예약이 모두 끝났다.
종말론이 유달리 기승을 부린 중국에서는 베이징(北京) 등 9개 지역에서 전능신(全能神)교 신도 1,000여명이 체포됐다. 지구 종말을 믿는 이들은 '전능신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전단을 뿌리다 붙잡혔다. 1989년 자오웨이산(趙維山·61)이 창시한 이 종교는 신도가 수백만명에 달하며 중국 전역에 지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말론을 믿는 중국인들은 비상식량과 양초 등을 구입하고 지진ㆍ해일 등 자연재해에 대비한 휴대용 '노아의 방주'와 지하 벙커 등도 마련했다.
아르헨티나 등에서는 지구 종말을 앞두고 집단 자살이 일어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 경비가 강화됐으며 미국 일부 지역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마야 문명 탄생지인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에서는 지구 종말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며 불꽃놀이, 기념촬영 등 다양한 축하행사를 마련했다. 멕시코 유카탄주를 방문한 미국인 존슨 모세는 "종말이 아니라 새 세계를 맞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대를 앞둔 기대감이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카탄주 메리다에서는 주술가, 점성가, 힌두교 학자 등 1,000여명이 모여 23일까지 예언자 정상회의를 연다. 마야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멕시코 치첸이차에는 예술가, 히피, 모험가 등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100만명 이상이 방문해 역대 최고 방문자 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됐다. 5,000페소(약 42만원) 상당의 전통 마야식 요리를 즐기는 만찬 행사도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에 지구 종말론이 상업주의와 결합했다는 지적도 일부 나오고 있다.
종말론이 극성을 부리자 각국 정부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은 종말 가능성이 없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NASA 관계자 돈 요만스는 "마야 달력은 일반 달력에서 12월 31일이 끝나고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는 것과 꼭 같다"며 "지구 종말을 믿는 것은 마야 달력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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