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뮤지컬 관람횟수 50~200회.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해 '꽂힌' 공연은 두 자릿수 재관람이 예사다. 장기 공연의 경우 별로 망설임도 없이 통산 100회 관람을 넘어선다.
"공연 관람이 쇼핑보다 훨씬 좋은 걸요." 무대에 푹 빠진 4명의 뮤지컬 마니아들이 17일 한국일보 편집국에 모여 뮤지컬 사랑하는 이유를 털어놨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최대 호황이었다는 올 한 해 국내 뮤지컬 시장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이들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지난 주 무슨 공연을 봤나.
남=내년 뮤지컬을 미리 볼 수 있는 갈라 콘서트 '핫앤뉴 뮤지컬 페스티벌'을 봤다. 평일인데다 날씨도 추웠는데, 6,000석이 넘는 공연장이 만석이라 깜짝 놀랐다.
이=지난주 내내 뮤지컬 배우 이석준이 진행하는 '이야기쇼'를 봤다.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해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토크쇼 형식의 공연이다. 어제 본 내용을 블로그 포스팅 하느라 밤을 꼬박 샜다. 두 번은 초대권으로 봤다.
김='오페라의 유령' '심야식당' '내사랑 내 곁에'를 봤다.
우='심야식당' '락 오브 에이지'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김종욱 찾기' '아이다'를 봤다. 이중 두 편은 이벤트에 당첨된 거다.
-관람 횟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경제적으로 감당이 돼나.
김=뮤지컬 마니아들은 대개 할인정보의 달인이다. 마니아간에 정보를 공유하고, 조기예매를 통해 부담을 줄인다. 또 대부분 공연은 사람이 몰리는 연말 이후, 1월부터 할인 혜택이 생기는 것도 팁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노하우가 쌓인다.
이=수입의 25% 정도를 공연 보는 데 쓴다. 대극장 공연보다는 비교적 티켓값이 싼 소극장 소극장 공연이 전체 공연 관람의 3분의 2다. 공연을 보는 게 나를 위한 어떤 소비보다 만족도가 높고, 남편과의 데이트도 대부분 공연장에서 한다.
우=쇼핑이나 외모 꾸미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수입은 공연 관람에 쓴다. 공연을 보기 위해 통장까지 따로 마련했다.
(뮤지컬 마니아의 80%는 경제력 있는 20, 30대 싱글 여성이다. 일부에선 '된장녀'(타인의 경제력에 기대 과소비하는 무개념 여성)라고 하지만, 그들은 명품을 사들이는 대신 배우들의 열정적인 무대에 지갑을 여는 것이다.)
-연간 몇 편이나 보나. 뮤지컬을 계속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연간 50편 정도 본다. 아버지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 것과 학교에서 춤을 배운 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 그 둘이 하나로 어우러진 장르가 뮤지컬이니까.
김=연간 80~100편쯤 본다. 한 역할에 여러 배우가 캐스팅 되다 보니 남녀 배우의 서로 다른 조합을 보기 위해 더 많이 보게 된다. 본격적으로 본지 10년이다. 그동안 '캣츠'만 200회 정도 봤다. 고양이가 30마리 나오는데, 하나씩 유심히 보다 보면 볼 때마다 새롭다. 주위에는 '오페라의 유령'를 자기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예매한다는 사람도 있다. 뮤지컬은 중독성이 있다.
이=연극과 뮤지컬 합해 70~80편 본다. 한 공연의 재관람까지 포함하면 150~200회다. 한 공연을 두 자릿수 이상 보는 사람들이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내 경우 같은 공연을 재관람하는 이유는 대개 배우 때문이다. 배우는 무대에 있을 때 가장 멋있다.
남=아직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월 1,2회 정도 보고, 방학 때 몰아서 많이 보는 편이다.
-뮤지컬 배우나 관객, 공연 수준 등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나.
김=많이 달라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뮤지컬 배우와 팬들의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는데, 요즘은 아이돌 그룹들이 뮤지컬에 들어오면서 그런 밀접한 관계가 사라졌다. 외국인 관객이 늘고, 관람 연령대가 다양해졌다. 공연장을 찾는 이유도 다양해진 것 같다. 올해 최고 인기작이었던 내한공연 '위키드'에 유난히 가족 단위 관객과 어린이 관객이 많았다. 영어 대사가 있어 영어 교육을 위한 관람이 많았던 것이다.
이=뮤지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예전에는 소수의 마니아들이 공유하는 장르로 여겼다면 이제는 조금 비싼 취미 생활 정도로 바뀌었다. 직장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한 번쯤은 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직장 회식으로 공연을 보거나 기업이 복지혜택으로 특정 공연에 대해 보조금을 주는 경우도 늘어났다.
우=가족 단위 관객이 늘었다. 나 역시 이번에 큰 맘먹고 아버지 생신 때 VIP석 5장을 끊어 가족과 함께 봤다. 요즘 공연장에서 아버지와 동행하는 가족을 어렵지 않게 본다.
-올해가 일본에서는 뮤지컬 한류 원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뮤지컬 마니아들은 해외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나.
김=얼마 전에 중국에서 '캣츠'를 보고 왔다. 우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캣츠'의 매력은 고양이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인데, 그 공연에선 거의 움직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의아했다. 아직 공연 문화가 정착되지 못해서인지 객석 반응도 잠잠했다. 뮤지컬 갈라 콘서트를 본 적도 있는데, '오페라의 유령'처럼 유명한 뮤지컬 음악이 나와야 박수를 치는 정도였다. 공연장 내에서 음식을 먹기도 하고, 가짜 티켓이 많아 세 번이나 티켓 검사를 받은 적도 있다.
-국내 공연장에서 뮤지컬 관람을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객들과 마주칠 때도 있나.
김=공연장에서 만난 일본 뮤지컬 팬들은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유명 극단 '사계' 배우들에게 팬들이 2m 이내로는 접근할 수 없도록 있다. 한 달에 한번 이상 공연을 보러 한국에 오는 이들이 꽤 많다. 한번은 공연장에서 기모노를 입은 중년 여성들을 본 적도 있다.
우=일본에선 조용하던 관객도 한국만 오면 변하는 것 같다. 때론 공연 중 과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에티켓을 지키지 않아 보기 불편한 적도 있었다.
이=요즘은 국내 티켓 사이트에서 외국인들이 티켓을 구입하기 쉬워졌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나 유럽에서도 한국 뮤지컬 티켓 오픈 시간에 맞춰 대기하는 이들도 많다.
남=덕분에 티켓 전쟁도 글로벌해졌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뮤지컬 출연 이후 현상인 것 같다. 한국에 지인이 있을 경우 부탁을 하기도 한다.
-뮤지컬 선택의 노하우가 있나.
김=많이 보는 게 좋지만 처음이라면 주변의 마니아에게 물어보는 게 좋다. 하지만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우=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후기나 예매 순위를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소극장 공연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인데, 그때는 후기가 더 도움이 된다.
-새해 기대작은.
이=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던 '레베카'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뮤지컬을 선택할 때 배우를 가장 먼저 고려하는데, 주인공 막심 역을 맡은 류정한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연기와 노래의 조화가 단연 최고다.
남=여름에 공연하는 '스칼렛 펌퍼넬'이 기대된다. 요즘 공연하는 '황태자 루돌프'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공연이어서 기다려진다.
우='레베카'에서 배우 유준상이 막심 역을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내년 '위키드'의 캐스팅도 주목하고 있다.
김=국내 초연작인 '레베카'가 궁금하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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