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국 뮤지컬은 경기 침체가 무색할 만큼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500만명(추산)이 표를 사서 봤다.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가 추산한 올해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약 25% 커진 2,5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인터파크가 전체 예매 시장에서 70% 이상 차지하는 것을 감안해 계산한 수치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 단체 판매와 현장 구매까지 합치면 성장률이 최대 30%에 이를 거라는 전망도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관객은 많아야 30만명, 매출 100억에 머물던 뮤지컬이 문화산업의 꽃으로 만개할 태세를 마쳤다.
올해 뮤지컬 전성시대의 신호탄은 '위키드'가 쏘아 올렸다. 오리지널팀 내한공연으로 한국에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5월 개막 후 3개월 만에 관객 2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05년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이 세운 3개월 간 19만명이다. '위키드'는 4개월 남짓한 공연에 23만 5,000명의 관객을 모으며 매출 200억을 기록했다.
'위키드'로 탄력을 받은 뮤지컬 열기는 상반기 최고 히트작인 '엘리자벳'을 거쳐 뮤지컬 최고 성수기인 연말 무대에서 또 한 번 폭발할 기세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2편, '오페라의 유령'과 '레미제라블'을 비롯해 대작들이 격돌하는 가운데 오리지널팀 내한공연 중인'오페라의 유령'은 '위키드'의 객석 점유율 95%를 뛰어넘는 인기로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디큐브아트센터, 블루스퀘어 같은 뮤지컬 전용 대극장이 생겨 장기 공연 무대가 많아진 것이 대작 흥행 릴레이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대작 내한공연이 없었던 지난해와 달리 '위키드' '오페라의 유령' '노트르담 드 파리'3편이 한국에 온 것, 극장의 객석에서 외국인 관객을 흔히 보게 된 것도 올해 뮤지컬 풍경이 예년과 크게 달라진 점이다. '엘리자벳'과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인데도 트렁크를 끌고 나타난 다국적 관객들이 매일 진을 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내한공연인'위키드'는 영어권 외국인 관객이 많았다. 관객이 글로벌화하면서 티켓 전쟁도 국제적으로 확산됐다. 특히 한류 스타가 나오는 작품은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접속하는 구매자들로 인해 예매 사이트가 몸살을 앓았을 정도다.
'한류 뮤지컬 원년'이라 해도 좋을 이러한 열풍은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에 가속도를 붙였다. '빨래' '김종욱 찾기' 등 100% 국산 창작 뮤지컬 10여 편이 일본 무대에 상륙하더니, 한국 창작 뮤지컬 전용 극장까지 생겼다.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기업 아뮤즈가 도쿄 롯폰기에서 운영하는 아뮤즈 뮤지컬 씨어터는 내년 4월부터 1년간 한국 작품 7편을 올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성장세가 내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에는 매출 3,000억원을 찍고, 5년 내 5,000억, 10년 내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소득 수준에 비해 뮤지컬 시장 규모는 여전히 매우 작기 때문에 성장 잠재력이 거대하다는 것이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씨는 "한국 뮤지컬은 아직 청년기도 접어들지 않았다. 본격적인 성장은 이제부터다"라고 진단한다. 그는 "'도둑들'과 '광해'로 관객 1,000만명 돌파작을 올해 2편이나 낸 영화산업이나 방송, 게임에 비해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는 훨씬 작지만, 성장률로 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급성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외형적 성장에 걸맞게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말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뮤지컬 산업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뮤지컬로 돈을 벌 수도있다는 게 처음 입증된 것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공연에서다. 7개월 공연에 관객 24만명, 매출 190억을 올린 이 작품은 국내 뮤지컬 대중화의 효시로 꼽힌다. 이후 2008년 경제 위기 때 한 번 꺾인 것을 빼곤 지난 10년간 매년 15~20% 성장을 거듭해 왔다. 사상 최대 매출 등 올해 거둔 눈부신 성과는 더 큰 불꽃놀이를 예비하고 있다는 게 공통적인 전망이다. 축구감독 히딩크의 말을 빌면, "한국 뮤지컬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