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부문 수상작 (뿌리와이파리 발행)는 국내 1급 번역자 4명이 3년 반에 걸쳐 '마치 한 사람이 한 듯한'매끄러운 번역을 해낸 작품이다. 수상소식을 전하자 정종주(49) 뿌리와이파리 대표는 "전혀 수상을 예상치 못했다"면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책을 함께 옮긴 정영목(52) 이은진(50) 오숙은(47) 한경희(38)씨는 각각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 분야에서 국내 손꼽히는 번역가들. 수상을 통보하면서 '바쁜 연말에 수상자 전원이 한 자리에 모이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깨고 정 대표는 4명 전원을 이틀 만에 섭외해 20일 아침 한국일보사를 찾았다. "책 출간 후 처음 만났다"는 수상자들도 들뜬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는 지난 200년간 유럽인들이 만들고 즐긴 거의 모든 문화를 망라한 백과사전적 통사다. 책, 소설, 신문, 잡지, 영화, 음악, 판화, TV, 만화, 게임 등 다종다양한 문화산물을 폭넓게 다룬다. 런던대 퀸메리 칼리지의 유럽비교사 교수가 각 문화 형식이 어떻게 태어나고 발전, 쇠퇴하는지를 생기 넘치게 그려낸다.
허나 이 책의 번역에서 부딪친 가장 큰 난관은 1,6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었다. 한 명이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혼자 옮기기는 무리라 생각한 정 대표는 저자, 번역가들로 구성된 '뿌리와이파리를 사랑하는 모임', 약칭 '뿌사모' 회원들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곧 4명의 회원이 역자로 참여하기로 했고, 2009년부터 번역에 들어갔다.
"원서가 2006년에 발간됐는데 아놀드 하우저의 (1951년)이후 이런 책은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번역에 참여하실 다른 역자들을 보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한경희)
이 모임의 좌장 역할을 했던 정영목 씨는 "보통 공동 번역을 할 때는 분량을 나눠 각자 번역을 한 다음 편집부가 알아서 조정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간사, 편집자와 번역자가 수십번 씩 피드백을 하면서 원고를 다듬었다"고 말했다. 역자들은 각자 관심분야의 주제를 초역한 후 워크숍을 통해 문장을 다듬었다.
오숙은 씨가 간사를 맡아 번역가, 편집자들과의 의견을 조율했다. 오씨는 "번역하던 다른 저서를 미뤄둘 만큼 매력적이면서도 힘들었던 일"이라며 "두 번 다시 이런 형태의 협업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중, 대중, 국민, 인민 등으로 번역되는 '피플 People' 등 다양한 함의를 품고 있는 원서의 용어들은 역자들이 각자 맥락에 맞춰 번역한 후 의견교환을 통해 문구를 다시 다듬었다. 이은진 씨는 "공동의 번역 용어를 선정하는 건 어렵고도 흥미로운 도전이기도 했다"며 "외래어의 어감을 적확하게 전하는 우리말이 드물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역자들은 번역과정에서 각자의 개성적인 표현을 절제했다. 덕분에 본심에서'한 사람이 번역한 듯 자연스러운 구어체 문장'이란 호평을 받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던 순간, 역자들에게"이만한 양질의 외국서적 공동번역 의뢰가 또 들어온다면 다시 해볼 생각 있느냐?"고 물었다. 다들 정 대표의 얼굴을 보며 머뭇거릴 때, 대표보다 세 살 많은 정영목 씨가 재빨리 대답한다.
"좋은 경험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심사평매끄러운 공역… 공들인 흔적 역력김석희 번역가예년만큼 풍성한 편은 아니지만 올해도 고전 번역에서 몇몇 성과가 있었다. 특히 인도의 서사시 가 마침내 번역된 것은 기릴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미완간 상태여서, 이런 책도 심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거친 끝에 심사를 유보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이 책은 산스크리트어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어서, 그쪽에 문외한인 심사위원들이 그 번역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견도 있었음을 밝힌다.
는 책의 규모도 방대하지만 그 내용도 남다르다. 문화사는 정치사의 하위 범주에서 기술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1800년에서 2000년까지 유럽인들이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해온 고급/저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문화시장의 팽창'이라는 관점에서 폭넓게 조망하고 있다. 이 책을 검토하면서 우려했던 점은 번역자가 많다는 것이다(분량이 많기는 하지만). 그러나 공역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역자들이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고, 더구나 이 책의 경우 유럽 주요 언어 전공자들로 구성된 협업 체제는 하나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축하의 인사를 보탠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조은민 인턴기자 (숙명여대 국어국문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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